▲ 이상익 부산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
첫째, 병역(兵役)과 부세(賦稅)에 있어서 모든 국민의 균등한 부담을 꾀하고, 지배계층의 부당한 특권을 타파하고자 했다.
초려는 왕실의 사고(私庫)로 인식된 내수사(內需司)의 혁파, 궁장(宮庄)과 충훈부(忠勳府)의 특혜 혁파, 양반 자제의 병역 부과 등을 강조했다. 이는 지배계층의 부당한 특혜를 타파하여 조세와 병역의 자원을 확충함으로써, 백성의 평균적 부담은 줄어들되 국력은 신장되는 정책을 모색한 것이다.
둘째, 실행이 가능하고 민생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모색했다. 예컨대, 백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답의 세율을 낮추자는 의견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대신 부역을 줄여줄 것을 제안했다. 대부분의 농민이 전답을 소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답의 세율을 낮추는 것은 부호(富豪)를 더욱 부호로 만들어줄 뿐이니, 대신 부역을 줄여줌이 민생에 실제로 기여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현안 가운데 하나였던 '공안(貢案)'에 대해서는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통해 공물(貢物) 제도 자체의 폐지를 꾀하였다.
셋째, 학교와 과거 제도에 대해서도 괄목할 만한 내용을 제안했다. 초려는 오늘날의 초등학교에 해당되는 '몽재(蒙齋)'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기존에는 '향교(鄕校)ㆍ사학(四學)'과 '성균관'의 2단계 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초려는 '몽재, 향교ㆍ사학, 성균관'의 3단계 교육제도를 제시한 것이다.
과거 제도에 있어서는 '임강(臨講, 책을 보고 읽어가면서 해설하는 것)' 제도와 '문ㆍ무를 아울러 시험할 것'을 제안했다. 기존에는 '배강(背講, 돌아앉아서 책을 외우는 것)'으로 시험했기 때문에 선비들이 경전을 암송하기만 할 뿐 그 의미를 궁구하지 않았거니와, 시험방식을 '임강'으로 바꾸어 경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를 시험하자는 것이다. 또 시험과목에 있어서도 '사서삼경'뿐만 아니라 '무경칠서(武經七書)'를 포함시키고, '활쏘기'도 포함시키라고 제안했다.
넷째, 초려는 군대를 양민으로 편성된 오위(五衛)와 천민으로 편성된 속오군(束伍軍)으로 이원화하되, 모든 운영방식은 동일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또 온갖 잡세들을 모두 군자별창(軍資別倉)으로 보내서, 상번군의 급료 등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초려의 '향약'은 '기해봉사'의 별책부록으로 제진된 것으로서, 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기존의 향약들은 주로 '4대 덕목'에 한정된 것이었던 반면, 초려의 향약은 풍속과 치안을 경제ㆍ교육 등과 연계시켜 논의하고 있다.
둘째, 한 고을을 중심으로 입안된 기존의 향약들과 달리, 초려의 '향약'은 전국적인 시행을 염두에 두고 보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고안된 것이다.
셋째, 조선시대는 양(良)ㆍ천(賤)이 구분되는 신분사회였던바, 초려는 양민과 천민이 함께 참여하는 제도를 고안했다.
많은 유학자들이 정훈을 남기고 있으나, 그것들은 대부분 윤리적 덕목을 중심으로 자손을 훈계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초려의 '정훈'은 가정의례ㆍ가정경제ㆍ친족관계ㆍ사회생활 등 전반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침들을 제시한 것이다. 윤리적 훈계나 근검절약의 강조 등은 모든 선비들의 정훈에 공통되는 내용이지만, 가정경제의 규모를 정확하게 산출하여 살림의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제택(第宅)을 설계하여 제시한 것 등은 초려 '정훈'만의 특징이다. 이상에서 초려의 개혁사상을 간단히 소개했거니와, 그 특징은 보편성의 추구와 실학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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