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보다는 인문학자로 불리기를 바라는 저자는 대중 강연과 집필 활동을 통하여 누구보다도 인문정신을 강조하며, 인문학자로서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말한다. 대표적으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 대 철학』, 『철학, 삶을 만나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김수영을 위하여』가 있다.
▲ 강신주 저 |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지구 반대쪽에서도 수많은 죽음과 파괴가 있었다. 바로 춘추전국시대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들의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고뇌에 찬 사람들이 있었다. 제자백가다. 제자백가를 오해하여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논리를 개발하여 자기 사상의 우수성을 입증하려는 사람들로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제자백가들은 수많은 전쟁 속에서 사람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을 사상이라는 도구로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공자는 '인'과 '예'로서 천하의 평화를 갈망했고, 묵자는 '겸애'를 통해, 한비자는 엄격한 '법' 적용을 통해, 양주는 국가라는 현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이들 모두를 '지금'으로 불러오고자 한다. 지금의 우리 현실 역시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 전과 다름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조건의 환경에서 비슷한 조건의 생물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그 생각은 비슷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제자백가의 귀환1-철학의 시대로 출발하는 여정은 하ㆍ은ㆍ주로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부터 시작한다. 신정국가였던 상(은)나라, 신하의 나라에서 임금의 나라가 된 주나라. 주목할 부분은 주나라의 탄생이다. 신하의 나라가 임금의 나라를 쳤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합리화시켰는지, 그리고 고대 가족중심문화가 어떻게 국가차원으로 발전ㆍ존속 됐는지 이 책에서 밝힌다.
저자는 단순히 역사적, 문헌적인 해석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주역, 춘추, 시경을 통해 주나라의 귀족과 서민, 다시 말해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인(人)과 민(民)의 사유를 엿본다. 주나라에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은 귀족이었고, 인이라 불렀다. 민은 차별되는 계급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핵심은 제자백가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오류 수정이다.
2000년 동안 공자의 유학 이념에 길들여진 동양의 사유는 철저히 국가권력에 의해 강요된 면이 있었고, 춘추전국시대에 실제적으로 힘을 발휘하던 사유는 묵자와 양주의 사유였다는 것이다. 제자백가 분류법을 보면, 유가, 묵가, 병가, 도가, 법가 등으로 나누는 방식은 한 제국이 들어서면서 국가통치이념에 맞게 각색한 결과였다. 그러나 당시 학파로서 존재했던 것은 유가와 묵가가 유일했다. 그 중에서도 묵가가 더 영향력이 있었다.
공자가 나이 일흔에 이르도록 유랑을 거듭한 것은 그의 사상이 춘추전국시대 군주들의 구미를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유 자체에 모순과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여태껏 제자백가에 대해 단순히 '가'를 붙여 알고 있었던 독자들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분석된 분류법을 참고하면 될 듯싶다.
제자백가의 귀환1-철학의 시대는 12권 시리즈 중의 시작이다. 저자는 관중과 공자, 손자와 오자, 묵자와 양주, 상앙과 맹자, 노자와 장자, 혜시와 공손룡, 순자, 한비자, 여불위 등 초특급 스타들을 총출동시킬 예정이다. 책에는 이들 뿐만 아니라 서양철학자들도 대거 등장하여 풍요로운 이해를 돕는다. 앞으로의 책들이 기대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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