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정희 태안 대기초 교사 |
얼마 전 개교기념행사에서 학교의 자랑거리를 말해보라고 하자, 1학년생이 전교생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그냥 좋단다. 그 말에 듣는 나도 좋고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큰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학교는 즐겁다. 그 안에서 생활하는 교사도 행복하고 아이들도 행복하다. 항상 즐겁다. 방학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많지만, 방학이 되면 심심하다는 아이들이 더 많다. 하교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아이도 있지만, 등굣길에 뛰어서 오는 아이들도 많다. 친구의 미소를 더 큰 웃음으로 받아주는, 화장실을 가도 손잡고 가고, 한 줄 서기 부탁을 해도 손잡고 떼로 가는 아이들이 많아 아직 학교는 즐거운 곳이다.
이런저런 여러 일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학교도 덩달아 시끄럽지만, 학교 안은 여전히 웃기고 재미난 일들로 넘쳐난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일들로 세상에 보이는 학교 모습이 지쳐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학생들은 교사의 희망이고 교사는 학생들의 희망이기에 학교는 희망을 안은 행복한 곳이고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학교는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
전교생 75명. 숲과 논, 밭으로 둘러싸인 작은 시골학교.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18년 전에 처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곳이다. 처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느티나무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큰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고 흔들림 없이 학생들을 대하는, 넓은 가지로 그늘도 만들어주고 바람도 불어주어 학생들을 포근히 감싸 안은, 내 어릴 적 나를 이끈 선생님들이 그러하셨듯 나도 커다란 느티나무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그 꿈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이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 마냥 쫄랑쫄랑 내 뒤를 따라다녔다.
“선생님은 어려서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행복하겠다! 지금은 꿈이 뭐예요?”
아이들은 어릴 적 꿈을 이룬 나를 부러워하며 당연히 지금도 꿈이 있을 거로 생각했나 보다. 나는 '더 좋은 선생님!'이라고 대답을 했지만 착잡했다.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꿈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약속하듯 말한 좋은 선생님이 이제는 내 새로운 도전이자 꿈이다. 강산이 두 번 변했을 법한 20년이라는 시간에 나는 '느티나무 같은 선생님'에서 '더 좋은 선생님'으로 약간 하향 조정한 기분이 든다.
얼마 전에 책 한 권을 꿀물 삼키듯 한 번에 삼킨 적이 있다. 매사에 부족함이나 완벽하지 못함에 불평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책을 읽는 동안 회초리를 맞는 듯한 강한 인상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라는 말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아프고 불꽃 같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인 내게도 학교생활이 물론 아프기도 하고 불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주는 사랑 또한 학생들이 떠나가도 그 학생들의 정신과 마음에 온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기억의 한 편이어도 좋고 기억의 저편이어도 좋으니 내 학생들에게 내 사랑이 남아있기를 기원해본다. 난 그들의 앞에서도 뒤에서도 교사이기 때문에 내 사랑을 지금도 앞으로도 전하러 갈 것이다.
'교육은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진부한 말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선생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하고 싶다.
“얘들아, 오늘은 어제보다 더 사랑해. 내일은 오늘보다 더더 사랑해. 모레는 내일보다 더더더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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