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목사 |
국가보훈처장과 현충원장 그리고 한국철도공사사장을 비롯하여 많은 관계자들과 일반인이 참석했다. 특별히 당시 딘 소장의 구출 작전 수행 중에 순직한 고(故) 김재현 기관사의 유가족들도 참석했다.
1950년 7월 18일, 딘 소장이 이끄는 미24사단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임무를 띠고 전투 중이었다. 그러나 평택과 천안 전투에서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하고, 급기야 대전과 옥천까지 밀리게 되었다. 그 가운데 딘 소장은 홀로 대전부근에서 낙오되었다. 미군은 33명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딘 소장의 구출 작전을 시도하였다. 이 때 이원역에서 대전역까지 미군을 태우고 작전을 수행한 철도원이 바로 고 김재현 기관사다.
적들의 방어망을 뚫고 대전역으로 가서, 딘 소장을 구출하고자 했던 작전이었다. 그러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의 세천에서 판암동 부근에서 인민군들의 집중적인 사격으로, 작전에 참여한 거의 모든 미군 병사들이 죽고, 기관사인 김재현씨도 8발의 총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다. 그 때 사용된 열차가 바로 '미카 3-129'호 증기기관차다.
이 열차는 1940년에 제작되어 6ㆍ25를 거치고 1983년까지 운행하다가 퇴역하고, 코레일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여 관리해 오던 등록문화제다. 코레일이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의 증거로서 소장하던 열차가 이번에 현충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번 '호국철도 전시장'의 개장과 열차의 이전 사업은 대전현충원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대전 현충원 민병원 원장은 직접 코레일 정창영 사장을 찾아가, 6ㆍ25전쟁 당시에 딘 소장 구출 작전에 사용된 증기기관차의 이전을 제안했고, 코레일 측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몇 개월의 준비 공사 끝에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창고와 박물관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혹은 먼지 속에 있을 수 있었던 역사적 유물이 빛을 보게 된 것이고, 특별히, 국가관과 안보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자라나는 세대에게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로서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감명 깊은 것은, 현충원과 코레일 두 기관의 적극적인 사고와 열린 의식이다.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마지못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일”을 찾아서 이루려고 하는 그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모든 공직자와 일하는 사람들의 본이 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한 때 복지부동(伏地動), 무사안일(無事安逸)이라는 말이 세태(世態)를 반영할 때가 있었는데, 찾아서 일을 하는 그 적극적인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와 태도가 있을 때 사회는 더욱 발전해 갈 수 있다.
또한 대의(大義)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협력하는 코레일 측의 모습은, 부서 이기주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극복한 아름다운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코레일 측은 이번 호국열차의 이전 뿐 만 아니라, 현충원 내의 열차 전시장을 준비하는 공사까지 감당하였다고 한다. 이런 열린 사고와 협력하는 모습은 단순한 산술적 합이 아니라, 사회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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