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정치부장(부국장) |
1974년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후 정치권 전면에 나선 그는 20대 초반 퍼스트 레이디를 경험했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전두환ㆍ노태우 정권 10여년간 대중 앞에서 사라졌었다. 이 시기는 인고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정치 경력 40년 가까운 박근혜의 앞길에 최소한 당내에는 장애물이 없어 보인다. 초등학교 동창인 정몽준 의원과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고, 대선 때만 되면 출마를 저울질하는 김문수 경기 지사 역시 역부족임을 자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세명은 올 대선이 아닌 박근혜 이후 2017년 대선을 목표로 운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과 '독재자의 딸'은 그에 대한 호불호를 나타내는 수식어다. 그러나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9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말했듯이 '독재자의 딸'은 정치적 희생양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적과 동지가 제대로 구별되지 않는 정치판에서의 38년 정치 여정은 부침의 연속이었다.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이라는 그의 저서는 대통령의 딸로서 한 국가의 영부인 역할을 했던 자신의 삶을 회고한 자전적 에세이다. 저서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그는 잠시 머무르는 세상에서의 추억만들기를 위한 정점에 서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세론은 유지될 것인가. 언젠가 사석에서 만난 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대표는 “대세론은 있을 수 없다” 고 잘라 말했다. 두 번이나 청와대 문턱까지 갔던 노정객의 절절한 경험담이다. 그것은 1987년 이후 치러진 다섯 번의 대선 결과와도 무관치 않다. 500만표의 차가 났던 2007년 17대 대선을 제외하고는 대략 50만표 차가 두 번, 200만표 차가 두 번이었다. 야권 통합후보가 나올 경우 박빙의 접전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2007년 한나라당은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두 정치 거물의 경선으로 흥행몰이에 성공했으나 야권은 노무현 이후 대안부재로 참패했다. 올 대선은 박근혜라는 정치 상수만 있지 2007년과 같은 흥행몰이는 예상하기 힘들다. 정몽준, 이재오, 김문수가 우려했던 일은 결국 현실화할 조짐이다. 반면 야권은 경선 흥행몰이를 통한 정권 창출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안철수라는 막강한 히든카드도 갖고 있다. 선거의 승패는 이슈의 선점에 있다. 2007년 이명박 후보는 성공한 기업가의 이미지와 경제살리기라는 이슈를 절묘하게 결합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박 전 위원장이 대선 출사표를 통해 밝힌 경제 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복지확대는 이미 대권 도전을 선언한 야권 후보들의 공약과 차별성이 별로 없다. 2007년 대선에서 제기된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과 대선후보 확정 후 쏟아질 검증 과정은 그를 옥죌 가능성이 크다. '현재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의 미래를 담보해 주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회창 전 대표는 “현직 대통령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어도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의 협조를 끌어내는 것은 박 전 위원장이 첫번째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야권후보와의 차별성 확보도 그가 앞으로 대선 여정에서 풀어야할 숙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대권도전 3수나 4수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결국 박 전 위원장은 올 대선에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상황이다. 대선출마를 접었지만 정몽준 의원, 이재오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 등 비박이란 이름으로 대오를 갖춘 것도 결국 차차기 대선을 위한 포석 성격이 짙다.
대권도전을 선언한 박 전 위원장은 오늘 충청을 찾는다. 세종시에 대한 약속은 그가 승부수를 던진 몇 안되는 사안 중 하나다. 충청에서 대권의 길을 찾는 여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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