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오후 생명공학연구원 정혁 원장이 자신의 연구실 옥상에서 투신해 숨진 가운데 연구실 앞에 경찰의 출입통제선이 둘러쳐져 있다. 손인중 기자 dlswnd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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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씨감자로 세계감자 농업의 녹색혁명을 꿈꾸던 '감자 박사' 정혁 원장의 죽음이 과학계를 충격 속으로 빠지게 하고 있다. 인공씨감자 연구에 매달려 평생을 바친 정혁 원장은 '식량이 부족한 국가에 인공씨감자를 공급해 식량문제를 완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해 왔고 30년 연구성과의 결실을 눈앞에 두고 세상을 등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30년 외길 연구, 감자 박사=1986년 생명과학연구원 전신인 과학기술연구원 부설 유전공학연구소에 입사해 지난해 5월 생명연 10대 원장에 취임한 정 원장은 1991년 세포조직배양기술을 이용해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종전의 씨감자를 콩알만 크기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인공씨감자를 세계최초로 개발 세계 32개국에 특허를 냈다.
1998년에는 ㈜미원 계열의 대상하이디어가 200억원을 들여 제주도에 세계 최대의 인공 씨감자 생산공장을 설립해 북한에서 시험 재배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정 원장이 꿈꾸던 녹색혁명이 실현되려던 2002년 말 대상하이디어가 대상식품에 흡수 합병되면서 이 공장은 문을 닫았다.
인공씨감자 상용화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았던 정 원장은 지난해 10월에는 인공씨감자 사업화를 위해 설립된 생명연 제3호 연구소기업(연구소 기술투자, 지분 20%)인 ㈜보광리소스에 녹색혁명의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이 회사 전 대표가 사기성 국내외 투자 계약 분쟁에 휘말리는 사건이 발생, 대표가 교체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경영에 책임이 없는 정 원장이지만 회사정상화에 노력해 왔고 녹색혁명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편 정 원장은 바이러스에 강하고 생존력도 강해 감자농업분야 녹색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공씨감가 세계최초 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아 생명공학연구대상(1996년),대산농촌문화상(1996년), 과학기술 우수논문상(1997년), 과학기술훈장(2002년) 등을 수상했다.
▲과학계 큰 별을 잃었다=“사건 발생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원장실에서 연구원 관련 이야기를 나눴는데 믿기지가 않는다”며 생명연 A박사는 정원장의 자살소식을 믿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B박사는 “자살할 분이 아니다. 테니스 마니아로 승부욕이 강했고 책임감을 갖고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5일 정 원장은 말레이시아 시림(SIRIM) 공동 연구센터 개소식에 참석,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국제 협력을 통해 새로운 바이오 연료의 생산과 유용한 바이오 물질의 창조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새로운 비전과 목표 달성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위암 가족력이 있던 정 원장은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해 왔지만 올해 초 소화기능 장애로 3개월여 동안 밥을 먹지 못하고 죽을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력이 떨어져 입원하기도 했던 정 원장은 지난 5월에는 어지럼증으로 연구실 2층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와 다리 등을 다쳐 4일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생명연은 “자살보다는 정 원장이 사고 후유증 등으로 인해 실족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생명연은 10일 정 원장의 장례를 연구원장(葬)으로 치를 예정이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 30분 을지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지며, 약 1시간 후 연구원으로 이동해 영결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장지는 연기군 남면 고정리 은하수 공원으로 결정됐다.
권은남 기자 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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