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한 ]욕망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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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한 ]욕망의 공화국?

[중도춘추]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7-05 14:15
  • 신문게재 2012-07-06 20면
  • 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
▲ 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
▲ 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고 좀 늦긴 했어도 경제적 수준에 걸맞은 정치 발전도 이뤄가고 있다. 최근에는 1인당 소득 2만 달러와 인구 5000만명의 단계에 진입함으로써 여러 나라가 부러워하는 20~50클럽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누구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도 있다. 민주적 정권교체의 경험은 이러한 사회, 정치적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전 세대보다 훨씬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상에서 여전히 수많은 불만에 휩싸여 있으며, 불만은 대부분 돈이나 권력과 연결돼 있다. 여전히 경제사정이 좋지 않으며 자신의 지배력이 약하다고 토로한다.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편만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실은 더 많은 돈과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터로 변모한 지 오래다. 이 모든 것은 욕망의 문제다. 개인의 욕망은 끝이 없으며 결국 다른 개인의 욕망과 충돌한다. 헤겔 같은 철학자도 시민사회를 '욕망의 체계'라고 불렀다. 그러나 올바른 사회라면 욕망의 부딪침이라는 단계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욕망의 분출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이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하며 개인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욕망을 통제하는 주체는 원칙적으로 개인이다. 국가가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요구는 선을 넘은 것이며 경우에 따라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정권 말기의 권력형 비리가 모두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비슷한 유형으로 반복되는 이 비리의 연쇄를 언제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누구나 한 번쯤은 자문한다. 비리를 저지른 자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 전에 우리 스스로 가치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비리는 전반적으로 비슷한 삶의 토대에서 불거져 나온 현상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욕망의 원한을 벗어나지 않을 때, 그리고 그 누구도 현재의 삶에 자족하지 않으며 욕망 너머의 세계를 추구하지 않을 때 모두는 가상의 범죄자일 수 있다.

여기서 돈이나 권력 너머의 삶에 대해 묻는다. 경제적 조건은 품위 있는 삶을 위해 마땅히 충족돼야 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것도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돈과 권력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것은 삶의 품격을 떨어뜨리며 개인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돈이나 힘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적어도 먹지 못하거나 인간 대접을 못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말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관심과 그 가치에 대한 인정이다. 그동안 우리는 정신적인 것의 가치를 폄하하고 모든 것을 돈과 힘의 잣대로 평가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소위 인문학적 가치를 너무 무시했던 것이다.

예컨대 대학과 학과의 평가에서 취업률을 으뜸 지표로 삼을 때 교육 현장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취업은 애당초 개인의 문제 아니던가. 국민은 이 책임을 정부에 묻고 정부는 대학에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 속에서 대학 교육은 직업교육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는 삶의 가치관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그런데도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정책을 좌우하는 한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은 배출될 수 없다. 대학까지 돈과 힘의 악순환에 동원되는 나라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훌륭한 삶은 돈과 권력을 통해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삶의 가치는 생명의 가치가 돼야 하며 사람을 살리는 가치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가치는 욕망의 사이클을 벗어날 때 비로소 자라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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