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은주 목원대 유아교육과 교수 |
그런 향수 때문일까, 직장을 다니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 역시도 아이들의 소풍이나 견학일이 되면 어김없이 도시락을 쌌다.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서 다른 점이 있다면, 난 우리 어머니께 그 어떤 마음의 표현을 한 기억이 없는데 우리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고 있는 내 등 뒤에 와서 나의 허리를 두 팔로 꼭 껴안는다. 아마도 아이는 지금 자기가 많이 행복하다는, 자기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엄마가 좋다는 마음의 표현 같다.
몇 해 전 일본의 어느 유치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놀이를 하던 중에 점심시간이 됐다. 유아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교실이나 바깥 놀이터 등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만들었다. 자신들의 가방에서 보자기로 싼 도시락과 컵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보자기를 풀어서 그 위에 도시락과 수저, 컵을 가지런히 놓고는 다른 친구들이 준비하는 것과 당번이 보리차를 자신의 컵에 부어 주기를 기다린다. 한 테이블 친구들의 이 같은 식사 준비가 모두 완료되면 테이블 별로 자유롭게 먹기 시작한다.
도시락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서는 김으로 활짝 웃고 있는 얼굴 표정의 밥과 문어 같은 재미있는 모양을 낸 소시지, 야채를 잘 숨겨서 고기완자로 예쁘게 변신한 동그랑땡 등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알록달록하고 새콤달콤한 것들이 도시락 안에 소복 담겨 있었다. 양이라고 해야 손바닥 하나 크기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따듯한 엄마의 정성은 유아들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으로 느껴졌다.
그 때 문득 식판에 음식을 담아 와서 먹는 우리 유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영양가 있고 위생적인 급식임에는 틀림없지만 엄마의 도시락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담소하며 점심을 먹는 그 유아들의 모습이 그렇게 귀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는 자녀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가 되면 엄마들이 먼저 천 가게로 간다. 우리 아이만을 위한 도시락 가방과 보자기, 컵 싸개 등을 만들기 위해서다. 유아들의 사물함에 걸린 가방은 각 가정에서 엄마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 천 가방의 따스함에서 다시 한 번 그런 것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귀하게 여겨졌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어린이집 원감을 하면서 급식에 특히 신경을 쓴 적이 있다. 먹는 것이 영아와 유아들의 신체발달 뿐만이 아니라, 인지와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서였다. 좋은 재료를 구입하여 가능한 직접 어린이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지향했는데, 물론 인력이 많이 요구되는 등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견학을 가는 날만큼은 도시락을 지참할 것을 각 가정에 부탁드렸다.
그 당시 어린이집에 다니던 영유아들의 가정 배경이 도시락을 장만하기에 어렵지 않음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에 항의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 시간이 없으니 견학을 갈 때도 원에서 도시락을 싸 달라는 것이었다. 부모들로부터 의외의 반응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직장을 다니면서 자녀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한다는 보상 심리에서라도 이 정도는 기꺼이 할 것이며 이런 중에 자녀의 행복한 모습을 기대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부모들이 이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를 귀하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도시락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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