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순 목원대 교직과 교수 |
누군가에게서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 한 움큼을 얻어오면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우리 집에 겨자씨는 있는데,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다른 집을 가보았다. '지난 달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요?' 또 다른 집 문을 두드렸다. '이 보세요. 사람이 죽지 않는 집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언제 죽었느냐가 다를 뿐이지 태어난 사람 모두는 당연히 죽게 되는데, 나 참.' 겨자씨 한 움큼을 찾아다니다가 지쳐버린 여인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그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그동안 아들 잃은 자신의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큰 줄 알았는데, 바깥에 나가보니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냥 일상이었다. 마침내 여인은 마음 한 편에서 죽은 아들에 대한 집착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겨자씨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는 살면서 겨자씨 한 움큼을 얻어 보려고 얼마나 많이 뛰어다니는 것일까.
기원전 210년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제는 서복이라는 신하에게 배 60척, 일행 5000명, 동남동녀 3000명을 데리고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명령한다. 이들은 불로초를 구하려고 우리나라 남해의 거제도와 제주도를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 불로초는 찾지 못했다. 세월만 흐른 뒤에 서복은 일본 규슈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진시황은 기다리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신화가 내려오고 있다. 진시황의 불로초이야기다. 자신의 몽골선교사 경험을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이용규 목사의 더 내려놓음이라는 후속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며 자신을 굳게 믿는다. 자신의 계획과 방법을 신뢰한다. 자기애와 자기의를 부둥켜안고 욕심껏 살아간다.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애쓴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다. 내가 가진 인간적인 욕심을 더 내려놓을 때 진정한 성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로 시작한다. 부모, 형제, 친구, 친척, 이웃, 동료 등 모두 인간과 인간 사이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배운다. 그런데 인간이 느끼는 갈등과 행복은 모두 열심히 배운 인간관계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기쁠 때, 슬플 때, 아플 때, 괴로울 때, 화날 때 우리는 모두 주변의 누군가를 찾는다. 그리고 내 말을 들어달라고 내 사정을 이해하라고 그래서 내 편이 되어 달라고 하소연한다. 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저 사람에게 설명하고 저 사람에게 느낀 감정을 이 사람에게 전달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게 그건데, 뭐가 그렇게 행복해 해죽거리고 화가나서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있겠는가. 우리에게 희로애락은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에 생기는 인간 고유의 감정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이 기쁨도 이 슬픔도 모두 남들도 다 겪는 그만큼의 분량 언저리에 속하는 것이리라. 딱히 내 신세만 더 처량할 것도 더 불쌍할 것도 없다.
겨자씨 없는 인생이 단 팥 빠진 붕어빵이라면 나에게 필요한 겨자씨를 일 년에 딱 두 알이라고 한정 지으면 어떨까. 한 알은 집안에서 찾고 다른 한 알은 직장이나 모임 등 바깥에서 찾는 것이다. 매일 아침 눈 뜨면 오늘은 어디 가서 겨자씨를 찾아볼까 하고 살짝 기대하는 일상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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