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순]겨자씨 한 움큼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조은순]겨자씨 한 움큼

[중도춘추]조은순 목원대 교직과 교수

  • 승인 2012-06-28 14:32
  • 신문게재 2012-06-29 20면
  • 조은순 목원대 교직과 교수조은순 목원대 교직과 교수
▲ 조은순 목원대 교직과 교수
▲ 조은순 목원대 교직과 교수
법륜 스님의 책, 엄마수업 에필로그에 나온 글이다. 배고프던 시절 먹는 것이라도 해결하려고 부잣집에 시집간 어느 가난한 여인의 일곱 살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 부잣집에서 누리던 자신의 행복까지 날아가 버리게 생기자 그 여인은 아들을 살리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누군가에게서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 한 움큼을 얻어오면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우리 집에 겨자씨는 있는데,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다른 집을 가보았다. '지난 달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요?' 또 다른 집 문을 두드렸다. '이 보세요. 사람이 죽지 않는 집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언제 죽었느냐가 다를 뿐이지 태어난 사람 모두는 당연히 죽게 되는데, 나 참.' 겨자씨 한 움큼을 찾아다니다가 지쳐버린 여인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그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그동안 아들 잃은 자신의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큰 줄 알았는데, 바깥에 나가보니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냥 일상이었다. 마침내 여인은 마음 한 편에서 죽은 아들에 대한 집착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겨자씨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는 살면서 겨자씨 한 움큼을 얻어 보려고 얼마나 많이 뛰어다니는 것일까.

기원전 210년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제는 서복이라는 신하에게 배 60척, 일행 5000명, 동남동녀 3000명을 데리고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명령한다. 이들은 불로초를 구하려고 우리나라 남해의 거제도와 제주도를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 불로초는 찾지 못했다. 세월만 흐른 뒤에 서복은 일본 규슈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진시황은 기다리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신화가 내려오고 있다. 진시황의 불로초이야기다. 자신의 몽골선교사 경험을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이용규 목사의 더 내려놓음이라는 후속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며 자신을 굳게 믿는다. 자신의 계획과 방법을 신뢰한다. 자기애와 자기의를 부둥켜안고 욕심껏 살아간다.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애쓴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다. 내가 가진 인간적인 욕심을 더 내려놓을 때 진정한 성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로 시작한다. 부모, 형제, 친구, 친척, 이웃, 동료 등 모두 인간과 인간 사이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배운다. 그런데 인간이 느끼는 갈등과 행복은 모두 열심히 배운 인간관계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기쁠 때, 슬플 때, 아플 때, 괴로울 때, 화날 때 우리는 모두 주변의 누군가를 찾는다. 그리고 내 말을 들어달라고 내 사정을 이해하라고 그래서 내 편이 되어 달라고 하소연한다. 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저 사람에게 설명하고 저 사람에게 느낀 감정을 이 사람에게 전달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게 그건데, 뭐가 그렇게 행복해 해죽거리고 화가나서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있겠는가. 우리에게 희로애락은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에 생기는 인간 고유의 감정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이 기쁨도 이 슬픔도 모두 남들도 다 겪는 그만큼의 분량 언저리에 속하는 것이리라. 딱히 내 신세만 더 처량할 것도 더 불쌍할 것도 없다.

겨자씨 없는 인생이 단 팥 빠진 붕어빵이라면 나에게 필요한 겨자씨를 일 년에 딱 두 알이라고 한정 지으면 어떨까. 한 알은 집안에서 찾고 다른 한 알은 직장이나 모임 등 바깥에서 찾는 것이다. 매일 아침 눈 뜨면 오늘은 어디 가서 겨자씨를 찾아볼까 하고 살짝 기대하는 일상도 행복하지 않을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