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남 경제부 기업유통팀 부장 |
최근에는 개교이래 처음으로 교수들이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학내 피켓시위를 벌였고, 학교 측은 총장의 특허 도용의혹을 제기한 교수들을 고소하는 등 학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모든 일들이 진행 중에 있다. 급기야 동문회마저 나서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꼬여만 가는 KAIST 학내 문제를 보면서 '도대체 학교의 주인이 누구이고, 국내 최고의 이공계 두뇌들의 산실인 KAIST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인지 'KAIST가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조 섞인 말들을 자주 내뱉는다.
한국과학기술원 특별법을 바탕으로 1971년 설립된 KAIST는 국내 최고 두뇌집단이라는 평가 속에 구성원들 모두 자긍심을 지녔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KAIST의 위기의식도 내포돼 있다. 국내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 왔던 서울대 이외에도 포스텍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텍은 KAIST의 비교 대상이 아녔다.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며 1986년 개교한 포스텍은 연륜이나 규모, 구성원들의 자질 면에서 KAIST를 위협하지 못했고 KAIST 구성원들도 포스텍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봤다.
하지만, 최근 포스텍의 각종지표와 평가는 KAIST 구성원의 자존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세계대학평가를 발표해온 영국 더 타임스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설립 50년 이내 세계대학평가(100 Under 50)'에서 포스텍이 세계 1위에 올랐으며, KAIST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기초과학연구원이 연간 최대 1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1차 10명의 연구단장선정에서 포스텍은 4명, KAIST는 2명의 교수가 선정됐다. 4대2, 포스텍이 또다시 KAIST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한 숫자다. 무엇보다 10명의 연구단장 가운데 KAIST 출신 연구단장은 단 1명도 없고 서울대 출신이 무려 8명이나 돼, KAIST가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공시된 2009년 학생들의 중도탈락률도 KAIST에는 위기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KAIST의 학생 가운데 자의 반 타의 반 학교를 떠난 비율이 2008년 2.8%, 2009년 2.2%였지만 포스텍은 같은 기간 1.0%, 1.1%였다. 학생들이 KAIST를 중도에 떠나는 것은 의대나 한의대ㆍ치대 등으로 진로를 바꾸거나 KAIST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서울대 등 다른 대학 이공계 학과로 옮긴다는 분석이다.
KAIST 교수를 지내다 포스텍으로 자리를 옮긴 A교수는 포스텍과 KAIST의 다른 점은 '주인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말했다. 특별법으로 설립된 KAIST는 정부출연기관이고 포스텍은 사립대학이다. KAIST는 정부관료를 비롯한 민간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주요 의사결정을 하지만 포스텍은 법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A 교수는 “KAIST의 의사결정은 학내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결과에 대해 이사회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한 푼을 쓰더라도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 하지만, 포스텍은 연구할 수 있는 의사결정이 빠르고, 전폭적인 예산지원 등 KAIST에 비해 자율적인 면이 포스텍의 장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인이 있는 포스텍이 주인이 없는 KAIST보다 교육과 연구활동이 신속하고 자율적으로 진행된다는 말일 것이다.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자연과 공공시설 등 공공재의 경우 누구나가 혜택을 누리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의식이 명확하지 않으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처럼 정부가 출연한 KAIST가 일련의 사태를 겪고 있지만 누구하나 책임감을 느끼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공재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KAIST지만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자존심을 자극하는 각종지표와 내홍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KAIST가 정상궤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주인의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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