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성의 한 사찰에 두 여인이 찾아 들었다. 모녀 사이라고 밝힌 이 여성들은 주지스님에게 거액을 시주하겠다고 접근해 왔다.
말쑥한 차림의 이 여성들의 말과 행동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잠시 후 주지스님은 은행에서 돈을 이체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모녀를 따라 나섰다.
은행에서 얼마 간 대화를 나누다 두 여성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시차를 두고 자리를 떴다. 한참을 기다려도 이 여성들이 돌아오지 않자 그제서야 주지 스님은 무언가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통장이 없어졌음을 알아 챘을 때는 이미 800여 만원의 돈이 빠져나간 뒤였다.
이들은 전국을 돌며 이런 수법으로 사찰만 골라 터는 모녀 절도단이었던 것. 이들은 사찰 관계자를 속여 통장을 빼내거나 때로는 보관 중인 금품을 직접 훔쳐 내기도 했다.
언뜻보면 엉성해 보이기도 하는 이들의 절도 행각에 전국 30여 곳의 사찰 관계자들이 속아 넘어갔다. 피해 금액만도 1억원이 넘었다.
5년 여에 걸친 이 모녀의 절도 행각은 결국 경찰에 꼬리를 잡히며 막을 내렸다.
이들을 붙잡은 둔산경찰서는 25일 어머니 조모(51)씨를 특가법상 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딸 문모(26)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7년부터 최근까지 전국 34곳의 사찰에서 모두 1억 185만원의 현금을 훔친 혐의다.
조사 결과 조씨는 판·검사나 군 장성 등 고위 공무원의 부인 행세를 하며 사찰 관계자들을 안심시켰으며, 딸인 문씨와 역할을 분담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 모녀는 특별한 주거지 없이 전국을 떠돌면서 인터넷을 통해 범행 대상을 정하고 사전 정보를 파악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하기도 했다.
사찰과 같은 종교시설의 경우 절도 사건이 발생해도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이용했으며, 주거지가 일정치 않은데다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이용하며 수사망을 피해다닌 탓에 이들의 범행은 5년 간이나 지속될 수 있었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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