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ㆍ25전쟁 발발 62주년을 맞은 25일 김문평씨와 유족들이 고 김윤평 육군중사의 묘비에서 참배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대전현충원 |
먼저 세상을 떠나 나란히 현충원에 묻힌 두 형을 찾아 나선 김문평(83ㆍ대전시 유성구)씨.
그는 고령에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에 의존하며 걸었다. 하지만 두 형의 묘소를 본다는 생각에 몸이 불편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연신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침내 사병 제3묘역에 나란히 안장된 두 형의 묘 앞에 선 김씨는 옛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큰 형, 작은 형 모두 동생들을 무조건 사랑하는 따뜻하고 인자한 분들이셨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쟁 당시 어딘가 있을지 모른다며 사령부에 동생을 찾아달라고 사령부에 보냈던 형들의 편지와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형들과 조우했던 때 등을 기억하며 두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삼형제가 모두 6ㆍ25전쟁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두 형이 먼저 세상을 떠나 김씨는 삼형제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됐다.
김씨는 “형제가 다같이 전쟁에서도 살아남았지만 두 형이 묻힌 묘소에 자리가 없어 나만 다른 곳에 묻히게 생겼다”며 애둘러 사후 같은 곳에 묻히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날 묘소에는 삼형제 중 첫째인 고 김윤평(육군중사)씨의 아들 김대영(58)씨와 둘째 고 김제평(육군중사)씨의 차남 김대경(47)ㆍ박선숙(가명ㆍ40)씨 부부 등 유족들이 함께 참배했다. 유족들은 두 형제를 참배한 뒤 묘비를 닦고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대영씨는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잘 보살펴 주십시오”라고 편지글을 읽었다. 김대경씨도 “가족의 화목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아버지 보고싶습니다”며 이제는 볼 수 없는 부친 생각에 울먹였다.
유족의 사연은 며느리 박선숙씨가 지난 5월 22일 현충원의 직원이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박씨는 1997년 탈북했고 지인을 통해 남편인 김대경씨와 만나 결혼했다. 박씨는 먼저간 시아버지의 생각에 참배 내내 울먹였다.
박씨는 “시아버지는 '같은 아픔을 겪은 며느리'라며 더 사랑해주셨던 분이셨다”며 “제일 좋아하는 냉면을 자주 사주셨던 그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삼형제 중 첫째 고 김윤평 육군중사는 1953년 화랑무공훈장을, 둘째 고 김제평 육군중사는 1951년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또 막내인 김문평 육군하사는 지리산 공비토벌 공로로 1953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강우성 기자 khaih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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