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8일에는 가뭄 끝에 단비가 제법 내렸다. 이날 도포와 두루마기를 입고 경향 각지에서 모인 300명이 넘는 유림 인사들은 행정도시건설청의 몰지각한 문화재 정책을 성토하고 규탄하기 위해 세찬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주지하듯이 초려선생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4만자가 넘는 대상소문으로 전환기를 맞이한 효종, 현종대에 국정전반의 개혁을 주장한 분이다. 우리 역사상 학문적, 역사적으로 귀감이 되는 몇 안 되는 위인 가운데 한 분이다. 이런 분의 유적(묘역, 신도비)을 개발에 방해가 되는 '지장물'로 간주하여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행정도시건설청이나 LH의 천박한 개발편의주의에 누군들 분노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초려선생 묘역은 2004년 연기군에서 충남도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였으며, 2007년 11월에는 문화재심사위원회에서 제1차 지정대상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세종시의 도시이념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8일에 있었던 전국유림 총궐기대회를 취재, 보도한 각 언론사의 기사를 보면, 초려선생유적공원추진회측의 주장과 함께 행정도시건설청 관계자의 입장도 전하고 있다. 다음 4가지가 기사화된 건설청 관계자의 말이다.
“후손 입장에서 볼 때 다소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초려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선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묘역 성역화사업이 마무리되면 세종시의 훌륭한 역사공원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역사공원 조성사업은 서로 상호간 합의된 내용인데, 문중측에서 부지가 좁다고 주장해 이런 문제가 나온 것 같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복합커뮤니티 건물은 시공에 들어갔기에 철거하고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건설청 관계자가 한 말이 내포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후손 입장에서 불만일 것'이란 말은 초려선생묘역의 보존을 주장하는 관련단체나 전국유림의 입장을 공의(公議)가 아닌 사심(私心)에 근거한 것으로 왜곡, 폄하하여 여론을 호도하려는 음험한 계산이 숨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둘째, '건설청의 계획대로 하면 초려선생묘역이 세종시의 훌륭한 역사공원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말도 건설청의 입장을 고집하기 위한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셋째, '초려선생유적공원추진회측이 양자간의 합의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부지를 많이 요청하고 있다'는 말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 양자간에 합의를 깨뜨린 쪽은 건설청 쪽이다. 유적공원추진회측에서는 1만여 평에 달하는 토지에 대한 보상도 거부하고 원형보존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공공단체나 여론의 공적인 주장을 이처럼 매도할 수 있단 말인가?
넷째, '복합커뮤니티센터는 이미 시공에 들어갔기 때문에 설계변경이 어렵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사가 이미 진행되었으니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불문하고 인정하라는 강짜가 아니고 무엇인가?
문득, 논어의 세 번째 이야기로 나오는 '말이나 안색을 교묘하게 꾸미는 사람은 어질지 못하다(巧言令色 鮮矣仁)'는 구절이 생각난다. 논어가 개권벽두부터 학문과 공부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권장하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것은 다 아는 얘기다. 좋은 일로는 학문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교언영색'에 관한 이야기다. 나쁜 일로는 이것보다 더 나쁜 일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행정도시건설청이 저와 같이 말을 교묘하게 꾸며 사실을 저버리게 된다면, 서민들이 과연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국가기관이 어질지 못하면, 힘 없는 백성들이 거친 황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