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개편위)가 발표한 광역시의 자치구와 군의 지위 및 기능개편안은 기초자치단체에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 위임사무를 처리하는 하급행정기관화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
시장은 시의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구청장과 군수를 행정직 공무원으로 임명하고 구청장과 군수는 6급 이하의 공무원에 인사권이 제한된다. 이러한 자치구와 군은 재량재원과 예산편성요구권, 규칙제정과 조례발의권이 없으며 국가와 시의 사무를 위임받아 보건복지와 주민생활사무를 제한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로서의 법인격은 없어 재산세 등의 기존 자치구세도 시세로 전환된다.
개편위의 제2안은 광역시의 자치구와 군수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되 의회는 미구성하는 방안이다.
자치구와 군이 처리하는 업무범위는 제1안과 동일하나 선출직 구청장과 군수는 자치구의 예산편성을 시의회에 요구할 수 있고 5급 이하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갖는다. 위임사무에 한정된 규칙제정권과 조례 발의권을 지닌다.
두 가지의 개편안은 자치구와 군의 자치권(법인격)을 인정하지 않고 기초의회도 구성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로서 법인격이 주어지고 일정한 한도 내에서 예산 등의 자치권이 인정되던 광역시 자치구와 군을 시장의 지휘ㆍ감독을 받아 단순 위임사무를 처리하는 행정구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자치구가 광역시의 종합계획에 반발해 대도시의 종합행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재정여건에 따른 자치구간 서비스 불균형, 생활권과 행정권의 차이로 주민불편 등의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또 자치구나 군에 기초의회를 두지 않고 시의원을 증원해 구와 군의 예산을 구청장과 해당 구 지역의 시의원, 주민자치회장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를 통해 심의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개편위의 지방행정체제개편안은 지방자치제도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방자치제도는 행정구를 법인격의 자치구로 전환한 1988년 지방자치법 개정과 1991년 구의회 구성, 1995년 구청장 직선도입의 추세에 역행하는 것.
더욱이 광역시의 자치구와 군은 도시문제 해결의 최일선에 있는 주민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자치단체로서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문창기 사무국장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은 20년간 이루어온 주민밀착형 행정이 후퇴하는 결과가 우려되고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되는 게 문제다”고 말했다.
또 임명된 행정직공무원이 단체장인 지방자치단체가 정책결정에 있어 주민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분석과 민원처리 지연을 부를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지방의회를 폐지해 자치구청장의 정책추진에 대한 견제기능 약화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고 규정한 지방자치법을 위반한 논란도 안고 있다.
박환용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은 “광역시가 자치구의 행정을 모두 결정하겠다는 것은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시민들이 경험하는 행정의 문턱이 상당이 높아갈 것”이라며 우려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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