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석윤 논산소방서 대응구조과장 |
'깨진 유리창'은 윌슨이 1982년 동료 조지 켈링과 함께 월간잡지 '애틀랜틱'에 발표한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란 건물의 깨진 유리를 주인이 방치하자 멀쩡한 건물 창문에 돌이 날아들고, 결국엔 나머지 창문 모두가 깨지고, 심지어 방화까지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작은 문제를 방치할 경우 그 문제로 무질서와 범죄가 확산돼 도시 전체가 무법천지 혹은 슬럼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최근에도 범죄심리학의 저변을 확보하고 있다. 이 범죄심리학 이론은 각 도시가 범죄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앞다퉈 도입했다. 뉴욕시가 대표적인 도시였다.
1994년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뉴욕지하철에 적용해 큰 효과를 봤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뉴욕지하철은 절대 타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명높은 범죄 지하철로 불렸다. 연간 60만건 이상의 범죄가 발생했다. 뉴욕 당국은 우선 지하철 차량 6000여대에 그려져 있던 낙서를 지웠다. 낙서가 또 다른 낙서와 범죄를 유발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작업이 끝난 뒤 지하철 범죄 증가율이 주춤해졌다. 3~4년이 지나자 범죄율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줄리아니 시장은 시 교통국이 올린 성과를 바탕으로 뉴욕 경찰에도 도입했다. 길거리 낙서를 지우고 보행자의 신호 위반이나 빈 깡통 등을 아무 데나 버리는 등의 경범죄를 엄격히 단속했다. 범죄 발생 건수가 75%나 급감했다.
윌슨 교수의 이론은 마케팅 분야에서도 활용됐다. 마케팅 전문가인 마이클 레빈 -미국에서 저명한 엔터테인먼트 홍보업체 '레빈 커뮤니케이션즈'의 창업자 겸 사장 - 은 2006년 깨진 유리창, 깨진 비즈니스란 책에서 “깨끗한 길모퉁이에 누군가가 쓰레기를 하나 던져 두면 반나절도 안돼 그곳은 쓰레기장으로 바뀐다”며 “직원 한 사람의 태만이나 불친절 때문에 큰 기업도 깨진 유리창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과 우리의 안전과는 어떠할까? 주5일제가 학교까지 전면화 되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웰빙과 여가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TV프로에서는 맛집을 소개하며 신선한 재료, 요리비법과 노하우, 인심 좋게 생긴 주방장을 보여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먹고 “이 맛, 이 음식 최고여~”라고 외치는 손님의 모습을 비추어 준다. 맛만 있으면 될까? 과연 그 식당은 안전할까? 맛있는 음식을 위해 노력한 것 만큼 그 식당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생각을 하고 실천했을까?
소방검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몇만원 안되는 소화기 하나 갖추지 않고 고장난 소방시설과 비상구를 방치하며 안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 법망을 피하기 위해 핑계만 늘어놓는 업주를 볼 때 의문과 우려가 될 뿐이다. 각종 매체에서 넘쳐나는 '맛집, 멋집'에 대한 홍보와 건강요리에 대한 소개로 우리의 뇌와 침샘을 자극하여 불어오는 춘풍과 함께 안전에 대한 관심은 강건너 불구경이다. 업주든, 손님이든, 보도매체든, 시청자든….
1995년 일본 고베 지진현장을 방문했을 때 가이드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일본인들은 여행을 가거나 외지를 나가게 되면 반드시 호텔의 1, 2층 방만을 고집한다고 한다. 유사시 대피가 쉽기 때문이다. 안전이라는 분야는 넓고도 깊고 복잡하다. 지금의 뉴스를 가득 채우는 주요 사건 사고만을 살펴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일본 지진이후 원자력에 대한 안전, 이상기후에 따른 자연재해로부터 안전, 먹거리 안전, 유괴사건, 매일 매일 발생하는 교통, 화재사고 등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인간의 삶과 안전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러나 안전은 어렵지 않다. 생활속에서 작은 관심과 행동만 있으면 안전하다.
대서양을 항해하던 타이타닉호의 침몰에서 보듯이, 타워링이란 영화에서 보았듯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보았듯이 조그만 부주의와 무관심이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처럼 작은 안전을 방치하면 우리의 생명도 깨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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