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정임 충남대 예술대 음악과 교수 |
처음 대전에 도착해서 조금 의아스러웠던 것은 광역시 명칭을 얻고 있는 대전이 문화적으로는 상당히 움직임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음악회 개최 수나 세계유명연주자들의 방한연주의 유치면에서도 수도권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고, 대전 지역 문화인력 인프라도 매우 부족한 현실이었다. 수도권의 문화적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고, 수준 높은 예술가들이 매년 배출되고 있는 이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름대로는 상당히 의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전 출신의 예술가들 중 출중한 사람들이 다수 있지만 대전이 수도권에 가깝기 때문에 그 예술가들은 지역보다는 중앙무대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적인 연주자들도 서울에서 연주를 하면 대전 지역 청중들이 서울로 가서 연주회에 참석하기 때문에 굳이 대전에 내려와서 다시 공연을 개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수도권에 가깝다는 것이 문화적으로는 발전의 방해 요인이 되어온 것이다.
그 후 10년, 대전의 문화계는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었음을 실감한다. 한 마디로 이제는 문화적 불모지라는 오명(汚名)에서 벗어나 상당한 문화적 인프라를 갖춘 문화도시로 변모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 대전의 문화적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다.
지난 5월 22일에서 24일까지 충남대학교 국제문화회관 정심화홀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공연이 있었다. 개교 6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에서 마련한 행사였다. 이 작품은 내용이 가볍고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있어 청중들 입장에서는 다른 오페라와는 달리 무거움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관람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반면에 배역을 맡은 성악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이 되는 작품이다. 한 사람의 배역이 맡아야 하는 분량이 매우 많고, 가사도 빠르게 붙여져 있어 암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아리아 이외에 중창의 분량도 많아 연습에 상당한 시간이 할애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막이 올라가니 공연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성악가뿐만 아니라, 합창, 오케스트라, 무대장치, 연출, 안무 등이 모두 수준급 이상이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주인공들이 재학생으로만 구성되었던 첫 날 공연이었다. 배역을 맡은 재학생들은 전체 공연을 충분히 소화하면서 성악적 기교면에서나 표현적 측면에서도 기성 성악가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충남대학교 동문들로 구성된 둘째날과 셋째날 공연도 역시 훌륭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문화도시로서의 대전의 미래가 매우 밝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라나는 세대의 역량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성장했고, 대전 출신의 문화 인프라 층이 매우 두텁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문화향유의 기회가 매우 확대되었다는 점도 문화발전의 척도를 가늠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이제는 대전도 전문오페라하우스를 만들어 지역 출신 문화예술인들로만 공연을 꾸려가도 충분한 문화 인프라가 축적되어있는 대구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겠다. 이렇듯 저력이 갖춰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문화 인력들의 응집력과 그러한 응집력을 대외로 펼칠 수 있는 대전시의 아낌없는 재정적 지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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