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만 대한지적공사 대전충남본부장 |
도화지에 친구의 얼굴을 그리려면 '살색' 크레용이 필요했는데 이상하게도 늘 모자랐다. 자주 쓰이는 색인 만큼 친구들의 얼굴과 팔다리를 꼭 꼭 힘주어 그리다 보면 질 낮은 크레용은 으레 힘없이 똑 똑 부러지기 일쑤였다.
'살색'이란 문자 그대로 사람의 피부색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일본과 함께 황인종의 피부색을 지칭하는 말로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2001년 몇몇 외국인과 일부 시민들의 청원으로 한국기술표준원(KATS)이 기존의 '살색'을 '연주황'으로 바꾸기 전까지. 2004년엔 '연주황'이 한자(漢字)이고 의미 또한 모호하다고 해서 다시 '살구색' 으로 개정했다. 영어로는 복숭아와 색이 같다 하여 피치 컬러(Peach Color)라 표기하고 화이트(White)라 하지는 않는다.
요즘 같은 국제화 시대에 '살색' 이라는 표현은 사실 적당치 않다. 지구상엔 셀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으며 동수의 피부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별적 인식의 확대와 시대에 역행하는 표현을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도 현재 우리아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크레파스나 색연필에는 '살구색' 또는 '연주황'으로 일괄 표기 돼 있다.
반면, 우리주변에는 아직도 '살색' 이란 표현이 무차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살구색'이라 가르치지만 막상 어른들은 '살색'이라는 표현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살색 화장품, 살색 스타킹, 살색 란제리, 살색 드레스 등 여전히 다방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아이들 역시 점점 그 표현에 동화되고 있다.
요즘 들어 신문지상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골 제목들이 있다. '다문화가정…', '…이주여성' 등. 아직도 우리주변에는 '혼혈'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보는 경향이 있다. '살색'이 아닌 '갈색', '검은색', '흰색' 등은 우리 '민족'과 차별된 남으로 인식해 버린다.
얼마 전 군(軍)당국은 창군 이래 최초로 다문화가정 출신 부사관이 임관을 앞뒀다고 발표했다. 다문화 출신 입대자가 늘면서 작년 4월부터 장교임관과 입영 선언문에 나오는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라는 부분 중 '민족'을 '국민'으로 바꿨다고 한다. 2028년이 되면 '살색'이 다른 현역병의 수가 1만2000명이 넘어설 것으로 군은 추산했다.
6ㆍ25 전쟁이 발발한지 올해로 62주년을 맞는다. 당시 전 세계 각국에서는 동방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의 전쟁에 자국 젊은이들과 구호물자를 보내왔다. 지원국의 숫자는 1950년대 93개 독립국가 중 무려 68%에 달하는 63개국이나 됐다.
국내 다문화 가정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도 그중 하나다. 그들은 이미 60여 년 전 우리의 위기 때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풍요는 과거 그들의 희생에서 기인했고 현재에 와서 처지가 조금 달라졌다 한들 과거의 은혜를 망각한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닐뿐더러 우리국가의 미래도 없다.
일주일 후면 6ㆍ25다. 62년 전 '살색'이 다른 그들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참전했으며 국고를 할애해 물자를 지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세계 경제력은 10위권이다. 이제는 다양한 피부색과 함께 모든 문화를 포용할 때도 됐다. 포용과 융합의 시대인 21세기에 언제까지 '단일민족'을 부르짖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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