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주환 대전사회복지관협회장 |
이렇게 수도 없이 많은 말 속에는 우리가 측량하기 어려운 힘이 있어서 울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회복지사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면서 감격해 하는 주민이 있는 반면,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물을 팽개치면서 사회복지사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내뱉는 주민도 있다. 배식하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로 격려와 고마움을 담아서 수고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한 두 분의 주민이 이것도 밥이냐고 항의하거나 이 따위 것을 나보고 먹으라는 것이냐면서 윽박지르는 말을 듣게 되면 그나마 간신히 버티고 서있던 두 발의 힘마저 모두 풀어져버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입이 달린 사람들에게 무작정 침묵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말이 없는 세상은 죽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말은 많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방책이 드러나고 다수가 찬성하는 방안이 성립하게 된다. 말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존립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반사회적인 일이고 인간의 존재이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잘못된 일이다. 물론 악의적인 곡해나 음습한 왜곡까지를 수용하자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 늦게 대학에 들어간 필자가 대학 2학년 때 대학신문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전두환 정권시절이었으니까 모든 것이 검열의 대상이었다. 그 때 쓴 글이 '이상기류 속의 대학, 어디로 가나'였다. 공부를 하되 바르게 해야 하며, 시대를 분간해서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매우 건실(?)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학생처장이라는 분이 나서서 신문을 정간시키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불필요한 기염을 토해내던 기억이 난다.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묘한 뉘앙스를 풍겨가면서 불이익을 운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약하면 '말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는데, 몇 마디 말에 나라가 뒤집어질 듯이 호들갑을 떨던 그 민망한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도 이런 일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얼마 전 크게 문제가 되었던 민간인 사찰과 같은 수준의 것은 아니더라도 무슨 말이 있으면 뒤를 캐고 내용을 확인하러 다니는 구태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공공조직에서는 이미 사라진 일이겠지만, 민간조직에서 오히려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우리 사는 세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한심스러울 지경이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대기업집단에서 다른 기업의 대표를 감시했다거나 노동조합의 활동을 뒷조사하기 위해 치졸하기 이를 데 없는 수단을 동원했다는 보도를 접하는 것은 슬프기 한량없는 일이다. 모두 말을 엿들으려는 짓이거나 말을 차단하려는 행태들이지만 결국은 부끄러움만 뒤집어 쓴 경우가 많았다.
정상적인 말의 통로를 누르면 사람들은 기발한 경로를 개척하게 된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면 그렇게 말하게 하는 것이 옳다. 그것을 감추려고 하면 엉뚱한 곳에서 부풀려진 이야기들이 돌아다니게 된다. 무엇이 잘못되었거나 틀렸으면 그렇게 말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이 사람들의 말을 대신하게 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