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신은 질펀하고 노출수위는 높다. 타이틀도 '에로틱 궁중사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후궁:제왕의 첩'을 에로 영화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살색'보다는 '핏빛'이 진하다. 핏빛 욕망, 핏빛의 광기다.
부모의 강요로 후궁이 된 여인이 있다. 화연(조여정). 그녀에게 반한 왕의 배다른 동생 성원대군(김동욱)이 있고, 화연의 옛 정인 권유(김민준)는 내시가 되어 궁에 들어온다. 그리고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움켜쥔 대비(박지영)가 있다.
병약한 왕이 승하하고 성원대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네 사람의 욕망과 광기가 분출하기 시작한다. 성원대군은 가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권유는 화연과 화연의 부모를 향한 복수심에, 대비는 손에 쥔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화연은 자신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 광기를 내뿜는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네 사람의 대립과 암투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조여정은 벗는 것을 넘어 감정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청순과 표독, 비련과 농염을 넘나드는 화연이란 캐릭터의 매력은, 조여정이 왜 '방자전'에 이어 다시 '19금 영화'를 선택하게 됐는지, 그에 대한 답이다.
성원대군 역의 김동욱은 '발견'이다. 그간의 소년 같은 여린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화연을 향한 애욕과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의 광기어린 눈빛은 압권이다. 조은지와의 폭력적이고 과격한 정사신도 관객을 압도한다.
전작 '혈의 누'에서 탐욕의 귀기어린 섬을 묘사했던 김대승 감독은 '후궁'의 궁 또한 욕망의 지옥으로 상상한다. 화연이 자신을 해하려는 이들에게 반격을 시작하는 순간, 지옥문을 활짝 여는 순간, '후궁'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대승 감독은 힘 있는 연출로 궁이란 공간의 광기를 선연하게 그려낸다. 이야기가 볼거리에 함몰되지 않도록 인물들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분출의 창구로 에로티시즘을 활용하는 연출은 영리하다.
김 감독은 “애욕의 정사(情事), 광기의 정사(政事)를 그렸다. 화두는 '욕망'이다. 욕망이 우리를 가두고 어렵게 만들고 불행의 나락에 빠지게 만든다는 걸 관객이 읽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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