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승 배재대 미디어센터장 |
첫째, 진보는 결코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만 보면 진보는 역사발전에 대한 신념으로 사회적 변혁을 추구하는 것인 반면 보수는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와 민주주의는 그 발전의 맥을 함께 하였다.
18세기 계몽주의에서 만들어진 이성적 인간과 평등개념을 바탕으로 한 계몽적 시민계급이 프랑스 혁명을 거쳐 등장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진보 개념이 싹트게 된다. 19세기 이후,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성장한 자본주의가 착취와 소외라는 새로운 사회적 모순을 보여 줌에 따라 이에 대한 대안으로의 사회주의 이념이 나타나게 되고 바로 이 과정에서 좌파는 곧 진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념적으로 왜곡되어 우파는 반공ㆍ보수로, 좌파는 친북ㆍ진보로 규정되어 버렸지만, 진보는 태생적으로 사회주의와는 관계없이 봉건사회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시민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적 변혁을 추구하는 것에서 싹튼 것이었다.
둘째,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자 기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민계급과 함께 시작된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대표를 뽑는 과정은 곧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의 적법성과 절차적 정당성은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해서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문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이 두 가지를 확보할 수 없다면 이미 민주주의로서의 생명은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의 사회는 산업사회를 벗어난 후기 산업사회다. 이제는 산업사회적 배경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자본주의 식의 좌-우 논쟁은 의미가 없다. 소위 말하는 좌파진보주의는 사회주의 이념에서 탈피해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더욱이 사회주의 체제는 북한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주를 반미 자주화로, 통일을 북의 현실을 무조건 존중하는 것으로, 평등을 산업시대의 노동계급 중심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진보는 더 이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논쟁이 아니라 후기 산업사회적 상황 속에서 인간성과 민주주의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과정과 절차의 산물이다. 따라서 적법한 과정과 공정한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확대해 나가는 것 자체가 진정한 진보라 할 수 있다. 권력획득을 위해 이념으로만 무장한 편협한 진보의식과 왜곡된 민주주의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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