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그런데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이라는 소설이다. 뛰어난 지성을 지닌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독창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인간을 나폴레옹과 같은 모든 법과 선악을 초월한 극소수의 초인과 인습적인 도덕에 얽매어 사는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으로 나누고 초인의 행동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하다고 여긴다. 심지어 살인까지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인간을 괴롭히는 벌레 같은 인간은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살해하게 된다. 그러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 현장에 찾아온 선량한 노파의 조카까지 죽이게 되면서 확신은 금이 가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예리하고 뛰어난 예심판사 포르피르가 등장한다. 그는 이 살인사건을 돈을 노린 단순 살인사건이 아닌 사상적 동기에 의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라스콜리니코프를 범인으로 지목해 집요하게 추궁하지만 끝내 범행을 밝혀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불쌍한 여자 소냐를 만나게 되고 살인을 고백하게 된다. 또 그녀의 설득으로 자수를 하게 되고 주인공은 형을 받게 되면서 시베리아로 떠난다. 물론 시베리아 유형지에 소냐가 따라가고 결국 소냐에 의해 라스콜리니코프는 신앙인으로 회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작가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종교적 갱생과 정신적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인간을 초인과 평범인으로 나눈 주인공의 사상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상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니체의 사상 속에서도 엿볼 수 있다. 법적으로는 확신범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사상은 법철학적 관점에서는 과연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 할까? 물론 이것은 법적으로 옳다ㆍ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혁명과 마찬가지로 법이 그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는 한계점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혁명은 기존의 사회전체를 변혁시키지만 법이 혁명을 불법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로 확신범 속에서 법은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한 채 방향을 잃는 것이다. 적을 살해하고 적국에 잡힌 전쟁포로를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쟁포로가 살인죄를 범한 범죄인인가? 물론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은 현행법상에 살인죄에 해당되는 것은 명백하지만.
<대전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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