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엄청나게 문제가 된 소규모 숙원사업비(의원 재량사업비)는 피자 조각 나누듯 나눠도 왜 공평해 보이지 않는 걸까? '공평할 것'은 물론, '다수가 납득', '서로에게 이익'과 같은 스핑크스 조건에서 벗어나서일까? “사업비를 편성하지 않은 집행부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가한 충남도의회의 예산안 칼질은 공수(攻守)의 선을 넘어 복수혈전처럼 격했다. 3029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에서 800억여원을 도려낸 과감함은 중앙정부나 다른 지방정부 기록을 뒤져봐도 전무후무한 수준이다.
액수뿐 아니라 내용도 몽니 사납다. 보복은 내포신도시 진입도로 사업비와 같은 필수 사업비, 장애인 생활시설 운영비, 노인복지관 개보수비와 같은 사회적 약자 예산, 벼 대체작물 재배농가 지원비 등에도 뻗쳤다. 침대보다 키가 크면 자르는(작으면 늘리는), 그래서 죽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시킨다. 책임 있는 도정 카운터파트 간 대응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맞삭'(서로 친구 삭제) 형태로 마구 달려 보기에도 참 민망했다.
극단과 극한을 달리는 길목에서 권희태 충남도 정무부지사는 기자 앞에서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까지 읊으며 몽니에 맞선 약간의 엄살을 섞었다. 의원들로서는 사업비 존속 여부와 별개로 “주민이 뽑은 의원을 감히!” 하며 사태를 악화시킨 처사는 사실 도민에게 용서 구해야 할 불찰이다.
진정성과 관계없더라도, 소규모 숙원사업비나 풀(pool) 사업비로 불리는 관행 예산으로 주민 민원을 챙길 부분이 있다거나, 사업비가 지방자치법과 지방재정법 정신에 맞다거나, 시청률과 드라마 작가 관계처럼 표 앞의 의원도 나약한 존재임을 이실직고했으면 혹시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 지역구 주민에게 의원 효능감을 환기하는 성격에도 불구, 배수로 정비나 농로 포장 등 생활민원 해결에 나름대로 요긴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보완하고 투명화했으면 호떡집에 불난 양 시끄러울 이유가 없다.
'재량사업비 있기? 없기?' 놀이가 펼쳐지는 충남의 이웃 대전은 사업비가 없고 충북은 있다. 충북은 내년부터 신청을 받아 선별 지원한다고 했다. 수도권(서울ㆍ인천ㆍ경기), 동남권(부산ㆍ울산ㆍ경남), 대구, 광주, 제주도 폐지했거나 없다. 부산은 애초 없었다. 경북, 전남, 강원은 있다. 전북은 폐지한다면서 다른 재원으로 할당하려다 땅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분명히 할 것이 있는데, 재정 지원 페널티를 내세운 정부지만 사업비 편성 자체를 금기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스핑크스 아저씨조차 '의원 1인당 2억원씩 45명분 모두 90억원' 셈법을 공평하다고는 안 한다. 감사원 관계자도 중도일보 기자에게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쓸지 특정하는 절차성을 강조했다. 명료한 사용처, 사용기준과 공공성을 갖추라는 얘기다. 지역구 체면치레용 쌈짓돈 성격의 태생적 한계로는 폐기보다 도리어 어려울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카드가 제시되든 행정안전부 지침, 감사원 경고를 회피하는 수동성보다 다양한 사회적 실천 속에서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 정책을 샤워꼭지에 비유하면 뜨겁거나 차다고 냉ㆍ온수 양쪽으로 성급히 틀어대지 말고 알맞은 온도의 시차 쯤은 예측해야 한다. 일부 의원들은 사업비 일괄 편성을 요구한다는데, 눈앞에 전개된 꼭 같은 사안을 놓고 살인 용의자, 목격자, 사무라이 아내, 사무라이 혼백의 진술이 각각인 '라쇼몽 효과'가 느껴진다 할까?
불환과이환불균(患寡而患均), 부족함을 걱정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공자 어록이다. 이 말이 부담스러우면 배우 앤젤리나 졸리의 배꼽 아래 '나를 성장시킨 것은 동시에 나를 파괴한다' 문신이라도 상상하길, 그도 마뜩찮으면 피자집 아저씨의 지혜라도 얻길 권한다. 지금은 “맛 좀 봐라”며 잘라낸 추경예산안을 재심의해 살릴 건 살리는 일이 우선 급하다. 그리고 재량사업비 해법은 '재량사업비' 용어 안 쓰기부터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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