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됐다고 해서 사거리와 정확도가 현격하게 향상된 대포가 제작된 것은 아니듯, 18세기의 과학적 성과는 인류의 문화와 생활을 변화시키는 동기를 제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의 과학자는 자연과 물리적 우주의 기본적인 진리를 찾는 구도자와 같은 존재면 됐다.
뉴턴의 시대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뒤 아인슈타인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황금률 같은 명언을 남겼다. 과학자에게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20세기는 뉴턴의 시대와는 확실히 달랐다. 특수상대성원리 “E = mc²”의 발견은 곧바로 지구촌을 화학에너지시대에서 원자에너지시대로 바꿨다. 상대성 이론은 우주시대를 열어줬고, GPS 위성기술과 내비게이션의 정확도를 제공하고 있다. 광전효과는 레이저기술,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기술, 분광장치에 의한 자동문 발명으로 이어졌고, 분자운동식은 나노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이처럼 과학적 성과가 사회와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자 역으로 과학이 사회의 가치 판단에 의존하게 되는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20세기 마지막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귄터 블로벨 박사는 “과학과 일반 대중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과학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고 했다. 영국 과학자단체인 왕립협회는 2001년부터 '사회 속의 과학'(Science in Society)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과학과 사회의 쌍방향 소통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과학과 사회'가 아니라 '사회 속의 과학'인 것이다.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이 사회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과학기술에 한해 인류를 위해 고귀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 탄생된 원자력발전기술의 신뢰성도 최근 좌 클릭 중이다. 후쿠시마와 같은 중대한 원자력 사고를 겪으면서 기술적인 안전성은 객관적으로 향상되었다. 설계적인 안전성에다 천재지변에 대한 대응 안전성이 더욱 강력해졌고, 상상 가능한 모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원자력 안전에 대한 신뢰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상태다. 원자력안전을 위해 아무리 노력한들 대중이 받아들이고 믿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본의 경우도 자연재해로 인해 큰 원자력 사고로 이어진 원전은 54개 중 후쿠시마의 4기였지만 안전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자연재해를 견뎌냈던 나머지 50개까지 이어져 모든 원전의 재가동을 가로막고 있다.
과학이 사회와의 소통에 나섰다고 해서 사회적 동의를 얻는 효율성까지 높아진 것은 결코 아니다. 원자력뿐만 아니라 생명공학, 나노기술, 정보통신기술 등의 과학기술들은 비록 기술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받아도 사회적 신뢰를 얻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신기술이 사회적 저항을 이겨내고 영역을 확보하려면 공학적 언어만이 아닌 투명성, 일관성, 진지한 자세 등의 정서적인 요소들이 부가된 '공감할 수 있는 안전 (Empathetic Safety)'에 바탕을 둔 소통을 해야 한다.
공감할 수 있는 안전은 이달 초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OECD/NEA 주관으로 개최된 “원자력 위기상황에서의 소통”이라는 주제의 회의에서 좌장을 맡았던 필자가 과학자의 전문성을 베이스로 해서 대중과의 우호적인 관계, 대중들에 대한 일관적이고 진실한 태도 등이 더해질 때 신뢰는 형성될 수 있다며 제안한 용어다.
어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아인슈타인 방정식 E=mc²을 “PR의 힘(E)은 메시지(m)에 커뮤니케이션(c)의 제곱을 곱한 것에서 나온다”고 했다. Energy=messageⅹcommunication², 공감형 소통과 더불어 소통이 필요한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과학자들이 새겨봐야 할 명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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