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내가 뭐라고?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영수]내가 뭐라고?

[교육단상]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승인 2012-05-29 14:19
  • 신문게재 2012-05-30 20면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올해도 어김없이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어느 해부턴가 나에게 '스승의 날'은 참 곤혹스러운 날이다. 학생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기도 그렇고 돌려주기도 그렇고. 선물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며 알림장에 적어주기도 참 난처하다. 사실, 그런 알림장은 해석하기에 따라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차라리 스승의 날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겐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스승의 날'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다. 그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풀어보려고 한다.

스승의 날!

몇 년 전에 담임했던 6학년 학생들에게 스승에 대해 설명했다. 스승은 살면서 나에게 큰 깨달음과 가르침을 준 선생님이라고. 나는 지금 너희에게 선생님이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나의 가르침이 기억되고 큰 의미로 남아있다면 난 너희에게 선생이 아닌 스승이 되는 거라고. 그 녀석들이 졸업한 2년 후, 이런 문자를 받았다.

“김영수 선생님, 드디어 스승님이 되셨습니다. 스승님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지금 대덕중에 다니는 규리의 문자였다. 난 그날 밤 가슴이 벅차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31일. 몇 년째 똑같은 문자가 도착한다. “스승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2013년 6월 ○일에 만나기로 한 거, 기억하시죠? 그날 꼭 나오셔야 해요. 잊지 마세요.”

2006년에 가르쳤던 6학년 우리 반회장 석범이의 문자다. 녀석, 잊을 때도 됐건만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새해 인사 문자를 적어 보낸다. 지금은 고3이 된 녀석들, 아직도 녀석들은 나를 기억하고 멋진 모습으로 2013년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있다.

얼마 전 휴일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2년 전에 졸업한 우리 반 여학생 지예였다. 작년에도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 스승의 날 케이크를 나눠 먹었던 제자였다. 올해에도 꼭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다음 주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12명의 녀석이 건널목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말 많이 자란 모습이었다. 파란 불이 켜지고 드디어 만난 녀석들. 나보다 키는 훨씬 자라 있었고, 나는 녀석들의 이름을 기억하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점심때라 난 12명의 제자와 함께 근처 중국집으로 향했다. 맛있는 점심과 함께 녀석들이 준비한 케이크에 불을 켜고 스승의 날 축하파티를 열었다. 중국집 사장님께는 조금 죄송했지만, 너무나도 감동적인 파티였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카이스트 운동장에서 6학년 때 즐겼던 발야구를 했다. 6학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낄낄대는 녀석들의 모습 속에서 난 큰 감동을 받았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찾아오는 녀석들이 기특하고 아주 고마웠다. 내가 녀석들에게 무엇이라고.

난 매일 최고의 선물을 받는다. 바로 우리 반 학생들의 미소다. 아침마다 교실 문을 열 때마다 나에게 보내오는 우리 반 학생들의 미소, 나의 눈빛 하나에 웃기도, 울기도 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가끔은 '내가 무엇이라고'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갖고 따르는 우리 반 학생들을 보면서 난 벅차오르는 감동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나에겐 365일 매일 매일 스승의 날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나의 미소에 기뻐해 주고, 나의 가르침에 감동하는 녀석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나에겐 정말 최고의 선물이다.

지난 주말, 나의 제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발야구를 했던 내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엄마는 정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인가 봐요. 선생님은 참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난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