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문제는 경제라고, 이 멍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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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문제는 경제라고, 이 멍청아!'

[문화 초대석]김준기 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승인 2012-05-27 14:54
  • 신문게재 2012-05-28 20면
  • 김준기 미술평론가김준기 미술평론가
▲ 김준기 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김준기 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은 제도다. 얼핏 보아 예술은 무질서하고 비정형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엄격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적 제도다. 사회학자들은 예술을 인정투쟁의 장이라고 설명한다. 개인과 집단의 이해의 지평에서 서로 대립하며 공존하는 가치경쟁의 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개인과 집단의 상이한 비평적 기준에 따라 높낮이가 정해지는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다. 그런데 이 '예술은 주관적이다'라는 명제를 무색하게 하는 객관적 잣대가 존재한다는 점.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명쾌하게 규정하기 어렵게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예술의 가치를 가늠하는 객관적 잣대란 다름 아닌 시장의 가치다. 예술작품은 화폐가치에 의해 높낮이가 정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보편적인 비평적 시각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작품 보는 눈'이라는 공통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정서적 보편성이 어떻게 생성되는가 하는 데 있다. 관점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령 이중섭과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등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에 쏠리는 관심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유명 작고작가들의 공통점은 생전보다는 사후에 더 많은 관심을 얻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가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식민지와 해방공간, 전쟁과 재건의 시기여서 예술이 공공영역으로 자리잡을 여유가 없었다는 점은 십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시기였다고 하더라도,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은 있기 마련이다. 20세기 한국은 모든 영역들이 근대적 제도 틀을 확립하면서 권력관계를 형성했는데, 미술 또한 제도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권력관계가 나타났다.

전통사회로부터 이어온 미술권력의 재편 과정에서 살아남은 주류가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제도로 자리잡은 대학 또한 주류의 온상이었다. 상대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시장 또한 주류의 것이었다. 관학파와 더불어 교육과 시장이 만든 주류가 20세기 한국미술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는 미술문화의 권력관계를 새롭게 정리해주었다. 여러 가지 동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변수는 시장의 확장이었다. 1980년대 급격하게 성장한 시장은 미술의 권력관계를 재편했다. 생전에 권위를 떨쳤던 그 어떤 작가들보다는 가파른 속도로 치솟은 몇몇 대가들의 작품 가격은 대단했다. 물론 작가의 비평적 가치와 시장의 가치가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비평적 가치는 높은데 대중적 인기와 시장의 평가는 낮은 경우도 많다. 문제는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것. 일부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걸 보면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다.

왜 미술작품의 가격은 합리적인 시장의 법칙, 그러니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훨씬 상회하는 비합리적 수준으로까지 치솟는 것일까? 작고 작가의 작품은 희소성 때문에 작품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생존작가 작품마저도 이른바 미술투자라는 이름 아래 비상식적인 수준으로 널뛰기를 하다가 거품이 내려앉은 일이 있다.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가 더 우위에 서는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현상이 문제의 핵심이다.

“문제는 경제라고, 이 멍청아”. 이 말은 예술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작품수집은 미적 가치를 독점적으로 소유해서 사적으로 사용(감상)하는 '사용가치' 때문이 아니라 화폐를 확대재생산하는 '교환가치' 때문이다. 가치전도의 현상이다. (작품이라는) 상품을 통한 (화폐)가치의 발견은 자본주의의 필연이지만 어디까지나 상위 1%만의 시장논리다. 99%의 안팔리는 작가들마저 이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문화소비자인 시민도 마찬가지다. 미술문화에 문외한일수록 1% 문화권력을 숭상한다. 과연 누구의 눈맛에 맞는 예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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