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겸훈 한남대 입학사정관 |
이 문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들었던 날에 자신의 일기에 “슬프고 충격적이다”라는 말과 함께 쓴 구절이다. 평생을 권력의 앞잡이였던 검찰과 정보기관(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으로부터 각종 공작에 시달렸던 그가 한 말이기에 단호함과 참담한 회한이 짙게 묻어난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시절 검찰과 정보기간의 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권력의 앞잡이 역할을 해왔던 검찰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학연과 지연에 구애 받지 않는 깨끗한 인사와 권력을 위해 검찰권을 행사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검찰개혁은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 권력만 바뀌었을 뿐 검찰의 행태는 변한 것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19대 국회가 출범하고 12월에 있을 차기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암울하고 참담한 이 말이 귓전에 맴도는 이유는 검찰에 거는 국민적 기대와 다른 음험한 움직임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느낌이 나만의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지만 작금에 돌아가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 대표적인 몇몇 징후를 살펴보자.
우선 19대 총선 당선자 중 79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 가운데 1명이 기소돼 이미 재판에 넘겨졌고 5명은 불기소, 73명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는 지난 18대 총선 당선자 중 37명이 입건된 것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19대 국회의원 가운데 26%가 선거법위반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감찰개혁에 필요한 법과 제도의 개정을 힘 있게 추진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검찰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검찰개혁이 추진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고, 수사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 개개인은 물론 의석수에 민감한 여야 모두에게 이는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19대 국회에서의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바람은 헛된 기대로 끝이 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다른 징후는 지난 18일 창원지검의 이준명 차장검사가 노건평의 자금 관리인의 계좌에서 수백억원 규모의 뭉칫돈이 발견되어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큰 것이 많아 수사를 멈출 수가 없다'거나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러던 그가 21일에는 돌연 입장을 바꾸어 '노 씨와 관련이 없다'라며 발을 뺐다. 물론 검찰의 발표 이후 일부 언론들은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적어 3년 전에 했던 것처럼 부지런히 퍼나르면서 혹세무민하는데 적극 동조했다.
이 일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노무현의 죽음을 직면해서 검찰이 밝혔던 사과는 거짓이었고, 그들은 여전히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준명 차장검사는 수사기관이 지켜야 할 '피의사실 공표 금지의무'를 어겼고 노무현 서거 3주기를 앞둔 매우 민감한 시기에 수사활동을 정치적 행위로 변질시켰다. 더욱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은 300억 차명계좌라는 사실이 모두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은 '영일대군'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의 포스코 압력 의혹, 최시중과 박영준의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 최시중의 불법대선정치자금 의혹, 4대강사업 비리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와 같은 권력실세들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고 절제된 행동을 보이면서 다른 한편에 대해서는 법과 절차를 어기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매우 공정하지 못한 처사다.
진심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검찰은 일부 언론과 합작하여 현 정권에서 발생한 의혹사건을 가지고 다음 정권을 길들이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대통령선거에 개입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 국민이 할 일은 검찰의 혹세무민하는 행태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일과 환부를 과감히 도려낼 후보자를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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