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
지난 2월 염홍철 대전시장이 독일과 프랑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소위 '드레스덴 구상'이라는 것을 밝혔다. 앞으로 대전의 시정방향을 감동과 매력, 흥분과 재미가 포괄된 '익사이팅 대전'으로 만들겠다고 하였다. 이는 시민들에게 즐거움과 보람, 방문객들에게는 매력과 영감을 주겠다는 의미이며, 궁극적으로는 부자도시를 만들고자 함이라 설명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순간 필자는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했다. 대전이 과학도시이고 창조도시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익사이팅 대전'이라는 말은 무척 생소했기 때문이다. '익사이팅 대전'이 '대한민국 新중심도시'라는 민선 5기 대전시의 비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것이 과연 앞으로 대전을 이끌어갈 슬로건으로 적합한지 의문이 들었다.
먼저 절차상의 문제다. 이 슬로건은 염 시장이 일주일 정도의 해외방문을 마치고 와서 던진 일종의 화두다. 염 시장 개인의 바람일 뿐 대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어떤 사전절차도 밟지 않았다. 말로는 항상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정작 대전의 시정방향을 제시하는 일에서는 일방적인 모습만 보였을 뿐이다. 비전이나 슬로건을 만들 때는 시민들과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생명이다. 그렇지 못한 비전은 아무리 화려해도 껍데기에 불과하며, 그들만의 공허한 구호에 그치기 때문이다. 외국을 며칠 방문하고 돌아와 '무슨 구상'이라고 발표하는 것도 시대에 한참 뒤처진 형식이다.
다음은 내용상의 문제다. 경영전략을 수립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기법으로 SWOT 분석이라는 것이 있다. 환경이 주는 기회와 조직의 강점을 결합시켜야 조직목표를 용이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환경으로부터의 위협과 조직의 약점이 결합되면 목표달성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광역자치단체가 처한 외부환경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결국 각 자치단체가 갖고 있는 강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 전략수립의 핵심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대전의 강점은 누가 뭐래도 '과학과 기술'이다. 지난 40년의 역사와 2만5000명의 연구 인력을 갖고 있는 대덕R&D특구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도와 견주어 뚜렷한 경쟁우위를 갖는 과학기술을 산업화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과 자원의 집중이 중요하다.
얼마 전에 대전에서 '세계조리사대회'가 열렸다.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과학도시 대전'과 조리사대회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행사를 치르는데 100억이나 들어갔다는 사실은 알고 나면 긍정적 평가를 내릴 시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전에서 치러지는 국제행사에 대전시가 일정부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특정 직업인들이 모이는 민간행사에 대전 시장이 조직위원장이 되고, 35명의 인력을 파견하는 것이 합당한지 의문이 든다. 올해 10월에 계획된 '푸드&와인 페스티벌'도 역시 대전의 정체성과 거리가 멀다. 상대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자원을 갖고 경쟁해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대전과 음식, 그리고 와인은 부적절한 조합이다. 이처럼 소비지향성이 강한 이벤트가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 먹거리와 무슨 관련성이 있다는 것인가?
대전의 비전과 슬로건은 시민들과 소통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고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그러한 비전과 슬로건을 토대로 대전의 정체성을 살리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과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다. 지금은 '익사이팅 대전'과 같은 설익은 구호 보다는 과학과 기술을 산업화하여 대전의 핵심역량으로 키우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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