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 막 상갓집에서 문상을 마치고 나온 듯한 사내들이 세계를 웃겼다. 외계인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고,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이들 외계인을 관리ㆍ감시하는 MIB(Men In Black) 소속 요원들이란 황당한 설정, 외계인 관련 음모론을 죄다 모아 뭉뚱그린 에피소드. 제 앞가림도 못할 것 같은 사내들이 지구와 우주의 평화를 지킨다는 우주적 넉살에 전 세계가 킬킬거렸다.
'맨 인 블랙 3'의 미덕은 10년을 건너뛴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리즈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SF-코미디 블록버스터 장르의 새 장을 연 영화지만 대작이라기보다 조촐한 소품에 가까운 규모도 그렇고 무뚝뚝한 케이, 제이의 무뎌지지 않은 입담이 반갑다.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이 MIB 요원이었다는 발랄한 상상력, 시치미 뚝 떼고 미국 대중문화의 괴상함은 모두 외계인 음모론 탓으로 돌리는 농담 역시 여전히 유쾌하고 '쿨'하다.
이번에는 '시간여행'이다. 달 감옥에 갇혀 있던 외계인 악당 보리스가 탈옥하고, 타임머신을 손에 넣은 보리스는 자신이 케이에게 붙잡혔던 1969년 과거로 돌아가 케이를 제거해버린다.
케이가 갑자기 사라지고 변화된 시간대에 제이가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외계인 전함들이 날아와 뉴욕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보리스가 타고 간 것과 같은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가 케이를 구하고 힘을 합쳐 보리스의 음모를 막는 것.
그런데 하필 1969년일까.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말을 빌면 “역사적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 해”다. 히피들로부터 비롯된 자유의 에너지가 넘실대고 영국 음악이 전 세계를 강타한 해,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 아닌 천체(달)에 발을 디딘 해다. 한국을 찾은 소넨필드 감독은 시사회를 마친 뒤 “SF적인 요소를 위해 달 탐사를, 코미디적인 맛을 위해 인종차별을, 당시의 문화적 공기를 담아내기 위해 앤디 워홀의 팩토리를 보여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과거로 간 덕에 최첨단을 자랑하는 시리즈는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과거라는 핑계를 대고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MIB의 장치들이 웃음을 안긴다. 만년필 크기만 하던 기억을 지우는 뉴럴라이저도 초대형이고, 젊은 케이는 이를 작동시킬 큼지막한 배터리를 허리에 차고 다닌다. 무엇보다 액션을 하기엔 다소 나이가 든 케이 역의 토미 리 존스를 잠시 밀어내고 조시 브롤린을 젊은 케이로 끌어들여 액션을 강화하는 편법이 가능해졌다. 조시 브롤린의 능청맞은 토미 리 존스 흉내는 일품이다.
물론 '맨 인 블랙 3'은 케이와 제이가 지구를 구하는 모험담이다. 하지만 영화를 지탱하는 힘은 케이와 제이의 '관계'에서 나온다. 과거로 돌아간 제이를 통해 드러나는 속 깊은 케이의 과거사는 마음이 짠하고, 케이와 제이의 인연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됐다는 사실은 찡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목젖이 뜨거워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굉장히 놀라운 것이라는 거, 그리고 거짓말은 늘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하는 영화다. 웃자고 만든 황당한 코미디치고는 꽤 진지한 메시지를 들려주는 셈이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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