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판암행 열차에 탄 시민들의 표정에 피곤함이 가득하다. |
새벽 5시 17분 반석역. 첫차가 오려면 13분이나 남았지만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흰머리의 60대 노인부터 피곤한지 벽에 허리를 기댄채 고개를 숙인 20대 여성, 면접보러 가는 듯 연신 혼자 인사말을 되뇌이는 청년까지 여러 모습이다.
핸드카트에 매실을 가득 실은 채 첫차를 기다리는 김춘자(62ㆍ공주시 반포면)씨. 한때 도마시장에서 젓갈가게를 운영했던 김씨는 IMF때 장사를 접은 이후 벌써 15년째 매일 집 주위 매실을 따다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김씨는 일터인 도마시장으로 향하기 위해 매일 새벽 5시도 안된 시각에 집을 나선다. 반석역까지는 꼬박 30분을 걸어야 한다. 김씨는 “힘들고 고되지만 첫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차량이 도착하고 곧 출발한다는 알림이 울리자 열차안이 하나 둘 사람들로 채워진다. 두터운 참고서를 읽는 박진홍(30)씨는 고시 삼수생이다. 박씨는 지난주 공무원채용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내년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박씨는 “잠깐이라도 한 단어, 한 문장이라도 더 외워야한다”며 “대학 졸업한지 3년이 넘었다”고 한숨을 내쉰다. 박씨는 이제 집안 생활을 떠맡아야하는 입장이다. 지난해 박씨의 부모가 퇴임했기 때문. 박씨는 “장남인 자신이 은퇴한 부모님한테 용돈이나 학원비를 부탁드리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면서 고시생의 아픔을 대신했다. 하지만 박씨는 “지난달부터 편의점 알바를 시작해 조금이나마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면서 겸연쩍어 했다.
어느새 월드컵경기장역을 지난 첫차 안의 모습은 다양하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대신하는 여성, 영어 발음을 연습하는 대학생, 밤사이 무척 고단했는지 그새 잠든 중년 아저씨 등 첫차 안은 고요한 분위기 속 각자의 사정으로 분주하다.
구암역, 선선한 새벽녘에 잔뜩 땀으로 젖은 셔츠의 남성이 올라탔다.
택배 상·하달 일을 하는 박상철(42)씨다. 박씨는 매일 첫차를 타고 퇴근한다. 야간에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이 짓이라도 해야 먹고 산다”며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고 애가 딸린 집이라 드는 돈이 많아 걱정”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박씨는 “어디 나뿐이겠냐”며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고 피곤할 것”이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한다.
중앙로역에서 만난 김인국(38)씨도 첫차를 타고 퇴근한다. 그의 직업은 대리운전기사. 김씨는 “새벽까지 일하는 대리운전을 하다보니 매번 다른 역에서 첫차를 탄다”며 피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피곤하지만 그럴수록 더 힘을 내야한다”고 말했다. 신흥역에서 내리는 김씨는 모두에게 “파이팅”이라 외치며 자리를 떠났다.
강우성 기자 khaih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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