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랑 결혼하셨어요?”
“돈에 중독돼서, 끊기가 무섭거든…. 돈 펑펑 썼지. 원 없이. 근데 그게 그렇게 모욕적이드라구….”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하녀'에 이은 또 한 번의 돈과 권력, 섹스의 복합관계에 대한 탐구다. 스케일은 훨씬 커졌고 더 노골적이며 에두르는 일 없이 직설적이다.
대한민국 상위 1%, 저속한 재벌가의 숨겨진 권력과 욕정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그려낸다. 꼭대기에 앉아 집안의 모두를 감시하고 조종하는 권력자 백금옥(윤여정). “1조원이라…. 대한민국에 그만한 돈을 거절할 사람 없대두요. 판사나 기자나 돈 달라는 것들 투성이야. 걸신들린 것처럼…”이라고 말하는 이 여자. 그녀에게 돈의 맛은 권력의 맛이다. 남편 윤 회장(백윤식)은 돈의 맛에 취해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슬픈 로맨티스트다. 그는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를 흥얼거린다. 사랑을 잃고 먼 길 떠나는 청년이 종국엔 죽음에 이른다는. 그에게 돈의 맛은 쓰디쓰다.
딸 나미(김효진)는 악취가 진동하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이나 섹스의 욕망을 통제하는 인물이다. 나미라는 이름은 들은 적이 있다. '하녀'에서 모녀처럼 지냈던 하녀 은이(전도연 분)의 비극을 지켜봤던 재벌가의 어린 장녀. 당시 임상수 감독은 어린 나미가 '괴물'로 자랄 것 같다고 봤지만 김홍집 음악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나미에게서 희망을 봤다고 했다. 임 감독은 '돈의 맛'의 나미에게서 그 희망이란 것이 진짜로 존재하는지 시험해보는 듯하다. '누가 죽어나가도 영작의 엉덩이를 만질' 그녀에게 돈의 맛은 섹스의 맛이다.
또 한 인물은 주영작(김강우). 재벌가의 비서인 그는 삐까번쩍한 집안을 구경시켜주고 가족들의 속내를 드러내 들려주는 관객의 눈과 귀이자 '젊은 육체가 돈을 좇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에게 돈의 맛은 취하고픈 '마약'이자 한편으로는 '치욕'이다. 촘촘히 얽힌 인간군상이 훔쳐보고 질투하고 욕망하고 부딪히고 깨지는 드라마가 때론 질펀하게 때론 유머러스한 볼거리로 펼쳐진다.
홍경택 화가의 '레퀴엠' '곤충채집', 황세준 화가의 '폭포' '시간' 등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재벌가의 집 안 풍경은 황홀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어느 재벌가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은 짜릿하다. 그래서 '돈의 맛'이 어떤 맛이냐고?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폐부를 향한 노골적인 냉소가 달달할 리 있겠는가. 씁쓸하다.
게다가 외롭고 쓸쓸하다. 그들의 욕망만큼이나 으리으리한 집에서 가족은 철저하게 고독한 개인으로 분해돼있다. 욕망하는 만큼 공허해지고, 솔직한 만큼 쓸쓸해진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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