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호 대전 동구의회 의장 |
지방자치는 독재 권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국민적 합의의 결실이었다. 지금 지방의회가 출범한지 20년이 지났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지 성년의 나이가 되어 그 큰 웅지를 펴지도 못하고 접게 생겼다.
추진위의 기초의회 폐지, 단체장 임명제와 같은 중차대한 개편안을 국민적 합의나 지방대표와 단 한마디의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절차상 중차대한 하자로 반민주적 개편안을 확정한 정치적 배경이 무엇인지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밀실에서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의 의지대로 짜깁기로 만들어진 인사들이 임기 말에 졸속 처리를 강행한 것은 마치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KTX 민영화나 대덕연구단지 법인을 통합하려고 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식 토목공사 정책의 종말을 보는 것 같다.
지금까지 지방자치 20년을 해 오면서 민의를 대변해 온 생활정치 실현의 선봉에서 이룩한 일들의 긍정적 기능은 보지 않고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켜 중앙집권적 정치로 회귀하려는 얄팍한 꼼수와 시ㆍ군과 광역시 자치구를 분열시키는 악행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지방의회의 부정적 측면의 출발점은 정당공천과 중앙집권적 재정제도에 있다는 사실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지방자치의 본질인 생활행정, 대화행정, 일선행정을 추구하는 생활정치를 실천함에 있어 광역지방정부보다 기초지방 정부에 강점이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에서 발표한 서울특별시와 6개 광역시에 속한 자치구 의회를 폐지하고, 서울을 제외한 6개 광역시 구청장을 임명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개편안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개편안은 '지방자치단체에는 의회를 둔다'라는 헌법 제118조를 위반한 것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심각한 무지를 인정한 것이다.
정부는 기초지방정부가 지방자치의 충실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중앙에 집중된 사무를 지방에 이양하고, 그에 따른 재정권도 지방에 나눠져야 하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여 국가 권력을 지방과 함께 균점하는 기초지방정부 중심의 지방자치제도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 줄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러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설마 기초의회를 없애기야 하겠느냐'며 방관자적 입장에 서있는 대다수의 지방의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권리 위에 낮잠을 자는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지방의원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라는 얘기가 아니라, 민주화의 산물인 지방자치제를 수호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방자치를 수호하는 것이 곧 민주화 투쟁이며, 지방의원들은 의당 이러한 투쟁의 선봉에 나서야 한다.
지난 9일 서울 YMCA 대회의실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반대하는 큰 세미나가 열렸다. 이러한 긴박감을 감안해 부랴부랴 한국지방자치학회와 전국시군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구의장협의회, 각 시민단체가 연대해 개최된 이 세미나에 정작 당사자들인 지방의원들과 구청장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어느 행정학자가 지방의원들이 권리위에 낮잠을 자고 있다며 힐난했다. 이틀 뒤에 대전시의회에서 같은 주제로 역시 세미나를 열었는데, 역시 지방의원들이 거의 없었다. 선거가 있으면 출마할 줄만 알뿐, 선거가 왜 필요하며 지방자치제는 왜 존속해야 하는지는 도통 관심 밖인 양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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