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섭]은폐를 조장하는 사회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구섭]은폐를 조장하는 사회

[수요광장]김구섭 한국무역협회 건설추진단장

  • 승인 2012-05-15 15:02
  • 신문게재 2012-05-16 21면
  • 김구섭 한국무역협회 건설추진단장김구섭 한국무역협회 건설추진단장
▲ 김구섭 한국무역협회 건설추진단장
▲ 김구섭 한국무역협회 건설추진단장
동물은 기본적으로 살기 위해서 은폐를 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다른 동물에게 발견되기 어렵게 주위 환경이나 배경의 빛깔과 비슷한 보호색을 띠는 것이다.

해양 동물은 푸르스름하고, 사막 동물은 모래와 비슷한 연한 빛이며, 북극의 동물은 하얗고, 식물과 접해 사는 동물은 녹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육지 동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변신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의 체색 변화 속도는 여타의 동물에 비해 두드러지게 빨라 위기 때마다 주위 환경과 비슷한 색깔로 몸을 숨기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카멜레온은 정확히 몇 가지 색깔로 변하는지 모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해양 동물 중에서는 문어가 위장술의 달인, 변신의 귀재로 통한다. 문어는 보호색과 의태를 모두 활용하기 때문에 바다의 카멜레온으로 통한다. 인도네시아 연안에 서식하는 흉내문어는 바다뱀, 넙치, 불가사리 등 무려 40가지의 생물로 변신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은폐의 기술을 군사 분야에서 가장 활용을 잘하고 있다.

이렇듯 은폐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은폐가 적이 아닌 선량한 사람들을 속여 자신의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사회 또한 이를 조장하는 현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은 위장 전입은 기본이고 논문, 학력, 경력 표절 등 각종 은폐에 대해 전혀 도덕적 의식 없이 떳떳하고, 책임 정치를 해야 할 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보듯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당명과 심지어는 로고와 색깔까지 바꾸는 카멜레온 전략으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우리 유권자 역시 웬만한 위장에는 무디어 졌고 심지어는 부추기기도 한다.

학교폭력은 백약이 무효인양 갈수록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폭력학교라는 낙인효과가 두려워 폭력 실태 현황을 축소 은폐하여 발표하려는 경향도 있다. 폭력 발생 건수로 평가하는 탁상공론식의 관료 행정과 한탕주의식 언론이 은폐를 조장하는 가장 큰 주범일 수도 있다.

고리 원전에서 최근 치명적일수도 있었던 정전 사고가 10분 이상 발생했다. 원자력발전소에서의 정전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사고 발생 시에는 현장 책임자의 신속한 대처와 사후 처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던 조직 문화다. 보고 위주의 경직된 상명하복의 비민주적인 조직 문화가 이를 키우고 있었을지 모른다.

건설현장에서 은폐되는 산업재해의 수를 심각한 수준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건설업자는 산업재해 비율이 높으면 불이익을 받게 되고, 이는 공사 수주에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건설업자는 공사수주 평가에 유리하고, 근로자들은 과다보상금을 수령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공상처리를 택한다. 공사업체 선정 시에 적용하는 산업재해의 평가시스템이 이를 조장하고 있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작년 초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모두 20개의 저축은행들이 퇴출당했다. 은행의 신용척도인 BIS비율과 순자산규모 같은 기본 자료가 모두 허위였고 심지어는 가짜 은행 통장까지 등장하였으니 저축은행들의 은폐 기술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더 이상 이를 은행의 CEO, 대주주와 임직원의 도덕성 탓만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이를 감독하고 승인하여 이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금융 당국의 책임이 더 큰 것이 아닐까?

영화 '도가니'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은폐 문화와 이를 조장한 사회 분위기와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은폐를 할 수 없고 더 나아가 은폐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