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정자 한국춤무리 대표 |
물론 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아주 가끔씩은 지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곳서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을 읽었다. 얼핏 남자의 물건이라면 상상 되는 것(조금은 민망한)이 따로 있겠지만 그 내용은 남자들의 애장품 이야기였다. 이어령 교수의 3m나 되는 책상, 가수 조영남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크고 네모진 뿔테안경, 저자 김정운 교수의 만년필과 오디오, 그리고 차범근의 독일 선수 시절의 향수가 깃들어 있다는 계란 받침대 등 그러한 내용과 약간의 심리학 측면에서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자들의 애장품은 무엇인가 라는 데로 관심이 돌려졌다. 우선 나부터는?
무엇을 애장품으로 꼽아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무엇 하나 특별히 애지중지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아~ 이런 삭막한 정서였다니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굳이 든다면 먼저 간 그 사람의 안경과 시계, 그리고 넥타이 한 점? 늘 나만이 볼 수 있는 곳에 비치해 놓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리고는? 그 옷을 입었을 때는 그 머플러 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사를 하든 계절이 바뀌든 꼭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을 보면 머플러들 이라고나 할까? 이번 여행에서도 인디안 핑크의 견과 면이 섞인 머플러 하나를 구입 한 것을 보면 확실히 머플러 욕심은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책을 읽고 나서 출판사와 저자, 밑줄 친 부분들을 옮겨 놓는 노트들?
하여 아주 가끔씩은 꺼내 읽어보며 다시 한번 감동하고 그렇게 책을 읽어라 읽어라 잔소리 하건만 들어 먹지 않는 내 딸을 위해서 그것 하나 만은 소중히 물려주고 싶어 딴에는 (게으른 내가)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노트들이 나의 애장품이라 할 수 있지도 않은가 한다. 그러면서 정말로 애장품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무엇 하나 특별하게 생각 할 만큼 마음을 뺏기는 게 없었다는 것은 그 만큼 살기에 급급했다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렇게 여행이든, 사람이든… 다른 것에 마음을 뺏기며 살았다거나. 아무튼 김정운 교수의 애장품 이야기 덕분에 평소 생각지 못한 생활의 한 부분이 건드려 지는 것 같은 여행지에서의 아침 산책길이었다.
다음은 엘렌 코트의 시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이다. 시작하라. 다시 또 다시 시작하라/ 모든 것 을 한 입씩 물어뜯어 보라/ 또 가끔 도보 여행을 떠나라/ 자신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치라. 거짓말도 배우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만들라/ 들꽃에도 말을 걸고 /달빛아래 바다에서 헤엄도 치라/ 죽는 법을 배워두라/빗속을 나체로 달려보라/ 일어나야 할 모든 일은 일어 날것이고 / 그 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흐르는 물 위에 가만히 누워 있어 보라/ 그리고 아침에는 빵 대신 시를 먹으라 /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 (나의 각주: 삶이 풍요로워 지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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