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주환 대전사회복지관협회장 |
이런 재앙 같은 일을 앞장서서 추진했던 일군의 자칭 전문가들은 정기적인 평가가 복지시설들을 업그레이드 했다고 강변한다. 사회복지사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루어진 발전임을 모르는 맹구 같은 소리다. 사회복지사들을 노가다(?)만도 못한 '노역의 수렁'에 빠뜨려 놓은 사람들이, 수개월동안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 놓은 바로 그 장본인들이 노동권이니 전문성이니를 운운하는 걸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평가는 앞에 거론한 것 말고도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우선, 복지시설을 홀딱 뒤집어놓을 정도의 평가주기가 너무 잦다는 점이다. 법에 따라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3년 동안에 법정평가와 유사한 일이 10번도 넘게 이루어진다. 매년 2회에 걸친 기초자치단체의 업무지도점검과 매년 1회의 법인감사가 이루어진다. 간혹 자치단체단위의 기획 감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또 기초 및 광역의회에서 쏟아지는 자료제출요구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연말에도 산더미 같이 밀려드는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는 사회복지시설의 업무를 마비시킬 정도다.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재 위탁 심사까지 감안하면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평가는 너무 빈번하다.
평가의 항목이 너무 많고 지나치게 문서작업 중심이라는 점도 문제다. 평가문항이 요구하는 자료를 만들다보면 소규모 시설에서도 어른 키의 두 배 정도쯤 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제본비용으로 수 백 만원을 사용한 사례도 있다. 간혹 쓸데없는 문항이 평가지표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문항이기 때문이다. 시행되지 않고 있는 일도 장차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포함시켰다는 넋 빠진 문항도 있다.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일을 어찌 평가한다는 말인가? 문제는 이런 희극적인 문항에 맞춰서 그래도 평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익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평가준비가 고단하기는 하지만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 맞는 지표들을 살펴보면 미리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 미흡했던 서류나 업무의 과정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재정리효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유대감이 깊어지고, 책임감과 역할수행능력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조직과 인사 그리고 기관의 전망에 관한 살아있는 데이터를 구축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목숨 걸고 평가를 준비하는 일은 이번으로 끝내야 한다. 평가의 주기를 늘리고, 난이도 역시 현재보다 대폭 낮추어서 사회복지사들이 밤 새워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평가가 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이 평가결과는 유사평가행위의 절대 자료가 되어야 한다. 푸르고 아름다운 계절을 악몽처럼 보내고 있는 전국의 사회복지사들이 1만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한탄할 일이다. 사회복지사들이 평가를 통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한 때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