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경태 대전이문고 교사 |
특히, 연둣빛 색채로 혼곤한 내 꿈에 마치 영어 'T' 자를 쓰고 군데군데 언더라인을 해 놓는 베짱이가 유독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베짱이에 관련된 반전동화를 읽으며 재미있어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뇌리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개미는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식량을 비축하고 집을 지은 반면에, 베짱이는 일하는 개미들을 한심하게 지켜보며 열심히 연주와 노래만 하다가 결국 겨울에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개미와 베짱이'는 모두가 아는 동화다. 개미처럼 어려울 때를 대비해 부지런히 일을 해야만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베짱이처럼 놀기만 하면 죽게 된다는 개미 지향적 이야기다.
그러나 반전동화는 겨우내 고생한 베짱이가 정신을 차리고 여름 내내 일만 한다. 물론 개미들도 일만 한다. 하지만, 개미와 베짱이는 모두 즐겁지 않다. 베짱이는 본인들이 즐거워하는 연주와 노래를 못했고. 개미는 그 즐거운 연주와 노래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깨닫고 그 이후 역할을 분담해 개미는 일하고 베짱이는 그가 잘하는 연주와 노래를 하며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개미가 베짱이에게 “한여름에 들리는 너의 노랫소리가 듣기 좋더라. 하지만,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단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추운 겨울에 고생할 거야”하면서 같이 열심히 일하자는 편지를 보낸다. 이에 베짱이가 개미에게 “너의 말대로 추운 겨울을 준비하려면 여름에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노래 부르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앞으로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노래를 부를 거야. 너에게도 좋은 노래를 많이 들려줄게”라고 답장한다. 어린이들의 동화를 넘어서는 감동적인 교육 그 자체다.
'개미와 베짱이'를 읽는 혹자는 그 후일담으로 무식하게 일만 하던 개미는 신경통, 관절염으로 병원에 다니다가 그동안 벌었던 돈을 다 써버려 가난해졌고, 노래만 하던 베짱이는 아이돌이 되어 코스닥에 상장했다고도 하고, 다른 혹자는 현대의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풍자한 이야기로 패러디해 회자하기도 한다. 또 다른 혹자는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여름철에 열심히 일만 하는 것으로 알려진 개미는 철저하게 역할이 분업화된 생활을 해 80%의 일개미는 노는 반면에, 베짱이는 독립생활을 해 생존과 개체 번식을 위한 모든 문제를 혼자서 해결해 개미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한다고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동화 속 베짱이의 연주와 노래는 자신의 개체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기 위한 생존의 처절한 절규라고 한다. 한편, K-POP의 어떤 걸 그룹은 '베짱이 찬가'를 불러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일 잘하고, 성실하고, 말 잘 듣고, 끈기 있고, 따라하는 팀플레이에 능한 개미 같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대우받는 시대는 간 것 같다.
스스로 알아서 자기 일하고, 순발력 있고, 말 잘하고, 유머 있고, 안목 높고, 창의력 뛰어나며, 함께 팀워크를 이루어가는 새 시대의 새로운 인물을 요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개미 혹은 개미의 덕목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의 바람은 개미와 베짱이 모두가 각자 좋아하는 일을 찾고 즐기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