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반세기 사제의 길… 낮은 데로 임한 '빈자들의 성자'

4반세기 사제의 길… 낮은 데로 임한 '빈자들의 성자'

만인을 사랑할수 있는 삶 늘 감사하고 또 멈출수 없죠 “울지마 톤즈 이태석은 아들사제” 군의관이었던 그에게 신부가 될 것을 권해

  • 승인 2012-05-01 14:05
  • 신문게재 2012-05-02 11면
  • 대담ㆍ정리=한성일 사회단체부장대담ㆍ정리=한성일 사회단체부장
[중도초대석]서품 25주년 '은경축' 맞는 황용연 법동성당 신부

천주교 대전교구 법동성당 황용연(62) 바오로 예레미야 신부가 오는 12일 사제 서품 25주년을 기념하는 은경축을 맞는다. 황용연 신부는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회복지에 헌신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아왔다. 위암, 후두암 수술을 받은데 이어 이제는 방광암 증세까지 보일만큼 자신의 육신을 혹사시키면서도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 황용연 신부는 '빈자들의 성자'였다. 이에 지난주 화요일 영산홍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법동성당을 찾아가 황용연 신부로부터 사제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황 신부님은 올해 은경축을 맞으셨는데요. 은경축을 맞는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실까요.

“사제서품 25주년 기념일은 은경축, 50주년 기념일은 금경축, 60주년 기념일은 회경축이라고 하지요. 저는 1987년 2월12일 천주교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경갑룡 요셉 주교님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고 사제의 길을 걸은 지 어언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제서품을 받던 날 이후로 평생 하한주 신부님이 지으신 '님의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님쓰신 가시관을/나도 쓰고 살으오리다//먼훗날/님이 날 보시고/님 닮았다 하소서' 이 시를 가슴에 담고 살아 왔습니다. 오는 12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법동성당 본당에서 여러분들의 도움 덕분에 사제로 25주년을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을 감사드리는 은경축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저의 가족 6남매가 이날 성당의 형제, 자매님들을 초청해 윷놀이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음식도 나누면서 감사와 고마움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신부님은 동기 사제들에 비해 10년이나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가시고 사제가 되셨는데요.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지요.

“저희 집안이 8대째 가톨릭 집안입니다. 저는 1950년 공주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대전에서 철도공무원을 하셔서 대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릴때부터 개구쟁이였던 저는 일반학교를 못다니고 검정고시를 치러야했습니다. 70년대에는 울산의 현대건설 조선소 작업장에서 일했죠. 이때 작업장 노동자들은 한달이면 서너명씩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시신처리 과정에서 회사측의 너무나 비인간적인 행태에 분노해 회사 총무부 직원과 대판 쌈박질을 했죠. 세상이 왜 이모양이냐고 분노하고 절규하는 저를 보고 인근에 살던 마리스타 교육수도회의 안드레아 수사님이 세상을 바꿔보라며 수도회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니는 수사가 되는 것은 반대하셨고, 본당 신부가 되는 것은 찬성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머니의 뜻에 따라 신학교에 가게 됐죠. 서른 한살에 신학교에 갔더니 입학식날 저를 보고 '보호자는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이러더군요(허허). 저는 '늦깨비'입니다. 늦깨비는 불가에서 늦게 들어온 땡초중을 일컫는 말이지요(하하). 열아홉살, 스무살 먹은 신학교 동기들이 1학년때는 저를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2학년때는 삼촌, 3학년때는 형님이라고 하더니, 4학년때는 형이라고 하더군요. 신학교 동기들과 형제적 친교를 나누며 공부한 셈이지요. 늦은 나이에 학교 공부를 따라가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허우적 허우적하며 겨우 신부가 됐지요(하하).

신학교 다닐때는 '개미회'를 조직해 학교의 폐쓰레기를 주워 팔아 모은 기금으로 복지 요양시설들을 방문해 지원했습니다.”

-87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유천동성당에서 보좌신부로 1년을 지내신후 전의 본당 신부님으로 발령받으셨지요. 이때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그당시 음성 꽃동네 오웅진 신부님이 노인들을 돌보고 계셨는데 우리도 노인요양시설을 하나 짓자고 뜻을 모아 1989년부터 '요셉의 마을'을 시작했습니다. 태안농협에 이야기해서 국산콩을 매년 500가마씩 삶아 메주를 만들어 전국의 성당에 판 기금으로 요양원과 성당, 치매시설을 운영했지요. 제 인생이 골병(?)드는 시작이었지요(하하). 복지타운 조성을 위해 2만평을 매입했고 시가 200억원 이상의 땅을 천주교 대전교구로 명의이전했습니다.”

-신부님은 교구내에 복지국을 창설하셨지요?

“주교님께서 저더러 '황 신부는 가난한 분들을 모시고 사는 것을 좋아하니까 교구에 사회복지국을 만들라'고 지시하셔서 대덕구 오정동에 사회복지국 사옥과 별관을 신축하고 30여개의 영역별 복지사업을 정착시켰습니다. 법제화로 복지정책을 바꾸게 되었는데 통합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안당의 집'에서 전국 최초로 장애 아동과 정상 아동의 통합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또 과거의 정신병자 호칭을 정신장애인으로 법제화시키고 '햇살한줌'을 통해 정신장애인을 복지영역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때 '한국의 카리타스'로 불리는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책임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

▲ 사진=김상구 부장
▲ 사진=김상구 부장
-신부님께서는 사회복지 사목을 담당하시면서 20여년간 대북지원사업을 펼쳐 북한에 감자재배 배양 기술을 전수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은 헐벗고 굶주리고 외롭고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또다른 당신 자신으로 보고 그들의 삶에 동반자가 되고 공감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제자들에게도 인간애를 갖도록 양성시켰습니다. 제가 가톨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병자와 거지, 알코올 중독자들과 삶의 동반자가 되어 그들의 삶에 공감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공감하지 못하면 제 성처럼 말짱 '황'입니다(하하하). 신부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것인지, 어떻게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대북사업을 위해 감자농사를 지어 식량을 지원하고 '고기를 먹여줄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평양 농업과학원에 무균종자 기술이전을 해줬습니다. 98년 당시 북간도와 연변의 걸인소년들을 '꽃제비'라 불렀는데 이들 꽃제비들과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2000년에 백금향 평두산농장에서 5만평에 감자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듬해엔 화룡시 팔가자진 상남촌 30만평을 50년간 임대해 2007년까지 식량용 감자를 매년 1000여t씩 지원했습니다. 2005년엔 북한에 직접 들어가 무균종자 생산설비와 기술을 이전하고 평양농업과학원에 동양 최대규모인 150평의 배양실을 건설했습니다. 이때 당시는 연 6회 방북해 최신 배양기술과 상토재배방식을 기술이전했지요. 2006년부터는 대구의 서종학 사장님이 큰 도움을 주셔서 매년 감자국수 생산설비 1조씩 총 3개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MB 정권의 금지로 모든 사업이 중단됐지요.”

-신부님께서는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에서 카리타스학 석사학위를 받으셨는데 카리타스학이 뭔가요.

“카리타스학은 그리스도교 사회복지학을 말합니다. 독일에서 창시된 학문이죠. 우리나라에 7개의 가톨릭신학대학이 있는데 대전가톨릭신학대학에서만 카리타스학을 가르치고 있어 전국의 신학대학으로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유일한 카리타스학 전공자인 제가 본당 주임신부 임기를 마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후진을 양성하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카리타스학은 일반 사회복지학과 개념이 다릅니다. 수혜대상자를 예수님처럼 섬기는 마음으로 복지를 베푸는거죠.”

-신부님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로 유명한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님이 아들사제라고 들었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전의 본당에 있을 때 군의관이 한명 왔는데 그가 바로 이태석 신부입니다. 독신장교 숙소인 BOQ에서 혼자 지내던 이태석 군의관에게 혼자 외롭게 지내지 말고 성당에서 출퇴근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때 성당 사제관에서 1년간 같이 지내면서 제가 이태석 군의관에게 신부가 될 것을 권했던거죠. 그는 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살레시오수도회를 통해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빨리 떠난 것은 그가 너무나 거룩해서일 수도 있고,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예수회에 이런 속담이 있답니다. 거룩한 놈은 일찍 불러가시고 똑똑한 놈은 다 뛰쳐나가고, 저처럼 별볼일 없는 사람만 수도회에 남아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일한다고요(하하하).”

-신부님은 법동 주공아파트 주변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주민들을 위해 쌀과 연탄을 지원해주시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무료급식하시는 것도 모자라 매주 토요일이면 대전역 동광장에서까지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급식을 해주고 계십니다. 마음에 사랑이 넘치시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볼 때 도와줄 재원이 없으면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고난주일 등 절기때면 금식을 해서 모은 돈으로 이웃 구제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공부한 카리타스학은 '사랑의 섬김'입니다. 주교님이 허락하셔서 신학교에 돌아간다면 사제가 될 학생들에게 예수님처럼 가난한 이웃을 섬기라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제 세례명이 바오로와 예레미야인데 두 사람 다 고행의 선지자였습니다. 제가 제 육신을 들들 볶아대며 안달을 하니 2009년에 위암, 2011년에 후두암 수술을 받고 올해는 방광암 증세까지 보이지만 제가 하는 카리타스사역을 멈출 수 없습니다. 마음은 편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취미는 낚시인데요. 주일 미사 마치고 녹초가 됐을 때 다음날 풍광 좋은 곳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이기심에서 벗어나 선하고 착한 마음으로 심성을 순화시키고 오곤 합니다. 제가 죽으면 보여줄 영상물 콘티도 짜놓았습니다. 전 신부가 되어 만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

대담ㆍ정리=한성일 사회단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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