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그러나 2004년 7월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같은 해 10월 위헌판결이 선고되어 신행정수도건설 업무가 중단되었다. 이후 2005년 3월 18일 '행정도시'로 격을 낮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이 공포되면서 도시건설이 재개되었다. 2006년 1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개청되었고, 같은 해 12월 행정도시의 이름을 '세종시'로 확정했다.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국민적 여망 속에 세종시가 출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세종시를 단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 시장, 교육감도 뽑았다. 아파트 분양도 다른 도시보다 청약률이 높다고 한다. '수도권 인구집중 완화와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의 미래지향을 담보하는 '개혁도시'라는 명분도 탄탄하다. 행정도시건설청에서는 '세계적인 모범도시'를 약속하고 있다. 정치권을 비롯해 누구도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세종시의 앞날은 밝다고 생각된다.
세종대왕은 민생의 안정은 물론이고, 학문을 장려하고 한글을 창제하는 등 우리 역사상 문화적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제왕이다. 도시의 이름을 '세종'으로 한 것은 '세종'의 치세를 이념적 지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세종시'가 표방하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도시'라는 도시건설의 기본방향에 딱 맞는 이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보전, 계승하여 정체성 있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세종시의 도시이념과 전혀 상반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현재 세종시 권역내에 있는 조선 중기의 대유현 초려 이유태 선생의 묘역, 신도비, 서원 등에 대한 문화재 및 역사공원 지정에 관한 일이다.
초려 선생의 묘역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8년 전인 2004년에 연기군에서 충남도청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였는데, 그 해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발효되면서 문화재 지정 업무 자체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후 초려선생기념사업회 등에서 누차 묘역보전과 문화재 지정을 촉구하는 청원을 청와대 등 관계 요로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행정도시건설청이나 토지주택공사에서는 선생의 유적을 장애물로 인식하는 등 아직까지도 문화재 및 역사공원 지정 등에 대한 확실한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초려 선생은 무려 4만여 자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인 기해봉사에서 국정전반의 개혁과 쇄신을 주장하였던, 국리민복을 추구한 탁월한 개혁사상가이자 실학적 경세론자였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초려 이유태 선생이야말로 세종시를 대표하는 상징인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의 학문과 사상이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개혁도시라는 세종시의 도시이념과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시가 앞장서서 초려 선생의 현창사업을 벌여도 시원찮을 판에 선생의 유적을 개발과 건설의 장애물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관계자들을 보면, 세종시가 내걸고 있는 도시이념이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며칠 전 세종시를 지나면서 대로변의 물웅덩이에 방치된 채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흙탕물 속에 파묻히는 초려 선생의 신도비를 보았다. 흙투성이가 된 신도비가 마치 역사와 문화 앞에 서 있는 초라하고 왜소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게 내세우는 '세종시'라는 이름이 초려 선생의 학문과 사상에 비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뿐인가? 국민들에게는 뭐라 변명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또 뭐라 말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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