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도 캄보디아 해외영농기지 건조장 내부의 건조시설과 창고. 농지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창고와 건조시설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
농업 공동경작사업을 추진키로 지방정부끼리 공식합의된 지역이 아무런 설명없이 3개월여 만에 다른 지역으로 바뀌었다. 도지사가 사퇴하거나 새로 선출됐다는 이유로 사업 자체가 지지부진 되거나 사업국가를 변경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국제 농산물가격에 의해서는 사업 자체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는 충남도 해외농업기지사업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추진지역과 속도가 결정되는 상황을 드러내는 것으로 현지농업에 나선 농민들의 피해만 키우는 계기가 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9일 충남도와 충남해외농업에 따르면 충남도는 2008년 해외영농기지를 본격 추진했다. 백제문화제 홍보차 캄보디아 씨엡립주를 방문한 이완구 전 충남지사는 캄보디아 농지활용방안을 제안받았다. 씨엡립주는 툰레호수를 중심으로 광활한 농지를 보유했지만, 상대적으로 농업이 낙후돼 있었다.
이완구 전 지사는 2008년 6월 17일 캄보디아 씨엡립주 청사에서 헤 소우 피린 씨엡립주지사와 농업 공동경작사업을 추진키로 전격 합의했다. 이날 충남도와 씨엡립주는 우호협력협정을 체결하면서 이 전 지사는 농업교류 방안을 제안했고, 피린 주지사는 농산물을 경작할 땅 제공으로 화답했다. 양 도지사는 수익을 공동 분배하는 방식의 구체적인 협력방안에 합의하며 논의를 급진전시켰다.
충남도는 합의의 구체화를 위해 생산자 단체인 축협과 낙협의 실무담당자를 참여토록 했다. 배합사료 주원료인 옥수수 계약재배와 국내 반입 등 다각적인 모색이 진행됐다.
하지만, 충남도 해외영농기지는 불과 3개월여 만에 씨엡립을 제쳐놓고 인근 반티에 미연쩨이주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없었다.
다만, 충남도는 사료 곡물 확보를 위한 해외농업기지 구축방안보고서에서 '씨엡립주는 관광업이 주산업으로 옥수수 재배용 토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반티에 미연쩨이주는 옥수수 재배용 토지를 다수 보유한데다 주 정부가 적극적인 협력 표명으로 유리한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지 농업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씨엡립은 농지는 물론 툰레호수로 농업용수가 풍부하다. 수확한 옥수수를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물류에서도 유리했다. 툰레 강을 이용할 경우 항구까지 바지선 운반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철도가 빈약하고 도로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현지 상황을 고려할 경우 연간 5000t 이상의 옥수수 운반은 육상보다 툰레강의 바지선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훨씬 유리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충남해외영농기지가 옮겨진 것은 정치적 이유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농업공동경작사업에 적극적이던 씨엡립 오웅 우엔 부지사가 반티에 민연쩨이주지사로 옮겨감에 따라 사업장소도 변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대 정부로 책임지는 협상보다는 유력 정치인 간의 정치적 협상에 의한 입장이 더욱 반영된 결과다.
충남도는 2008년 10월 2일 도청 소회의실에서 캄보디아의 오웅우웬 반티에 미연쩨이주지사와 사료용 옥수수 생산을 위한 농업합작회사 공동설립 추진 등 농업 교류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협약 내용은 충남도는 자본과 기술을, 반티엔 미연쩨이주는 토지를 각각 제공한다는 것으로 씨엡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충남도는 농민들에게 5000㏊의 토지를 제공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도내 농업법인과 생산자단체를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개최하고, 본격적인 해외영농에 들어갔다.
그러나 반티에 미연쩨이주가 제공하겠다던 토지는 산림개발지역으로 가로 세로 6m 간격으로 나무를 심어야 하는 지역이다. 옥수수 기계화 영농이 불가능했다. 충남도는 이때부터 그동안 줄기차게 내세우던 토지제공 약속을 슬그머니 접어버렸다.
협약에 앞서 9월 25일에는 캄보디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토지조차 승인권을 사실상 회수했지만, 이 같은 내용은 무시됐다. 충남도는 캄보디아 해외농업협력 조사결과 보고서에서도 토지소유권에 문제가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반티엔 미연쩨이주지사를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던 토지제공은 ㏊당 800달러라는 터무니없는 커미션에 깨져버렸다.
충남해농 이우창 대표는 “정부 대 정부로 협의를 통해 농업용 토지개발이 이뤄지는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싼 임대비를 내거나 사들여야 하는 일반거래와 다를바 없었다”며 “충남도가 해외농업을 현지 주지사만 믿고 정치논리로 풀어가려다 빚어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완구 전 충남지사가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2009년 12월 지사직을 사퇴하면서 충남해외농업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사실상 추진동력을 잃어버렸다. 충남도는 토지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고, 농민들 스스로 농지를 마련해 국내로 농산물을 들여오는 성과물을 내어야만 지원을 해주는 사실상 '갑'이 돼버렸다.
충남해외농업은 도지사가 바뀌면서 또다시 정치 입김에 흔들렸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취임한 안희정 충남지사는 러시아 연해주지역을 새로운 사료수급지역으로 검토했다가 큰 반발을 샀다.
캄보디아 해외농업기지에 대해 당시 안 도지사는 “지금은 시험재배를 하는 단계이고 현지에서 양해각서내용을 맞춰주지 못해 문제가 생겼다. 이 부분은 왜 그런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아직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외농업 참여 농민들은 안 지사가 이 전 지사가 추진했던 캄보디아 해외영농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고 오해하고 있다. 여기에 해외농업에 참여한 공무원들 역시 자치단체장들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실무자마다 말과 생각이 서로 따로따로라는 주장이다.
현지 농민들은 “이완구 전 도지사가 무책임하게 벌려 놓은 사업을 안희정 현 지사는 모른척 하는 꼴”이라며 “정치논리로 농업정책을 추진하면서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곡물가에 따른 해외영농추진도 장기적인 해외농업기지에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충남도가 본격적으로 해외영농에 뛰어든 2008년 옥수수 국제시세는 일시적으로 t당 380달러까지 뛰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바이오 오일과 세계적인 흉년 등으로 모든 농작물이 일제히 올랐다.
이때는 캄보디아 옥수수를 생산해 도입하는 것이 물류비용에도 큰 경제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옥수수값이 1년 만에 210달러대에 이르자 생각이 바뀌었다. 주 소비처인 사료업체들도 수입다변화 측면에서 해외기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충남도 역시 종합검토보고를 통해 옥수수가격하락으로 캄보디아산 옥수수 도입은 경쟁력이 없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캄보디아 프놈펜=맹창호 기자 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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