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화]한여름 우물물처럼… 가슴으로 기억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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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한여름 우물물처럼… 가슴으로 기억되는 사랑

[중도시감]김의화 편집부장

  • 승인 2012-04-26 15:56
  • 신문게재 2012-04-27 21면
  • 김의화 편집부장김의화 편집부장
▲ 김의화 편집부장
▲ 김의화 편집부장
#1. 말하지 못하는게 사랑 뿐일까?

남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일도, 때로는 한 사람에게 평생의 추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평생을 두고 기억되는 가르침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의 일이다. 오빠와 외사촌들이 놀러나간 오후. 매미소리 울리는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던 아이는 밭에서 일하시는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시원한 물을 가져다 달라시며 밭으로 향하셨던 외할머니. 심부름이 귀찮게만 여겨졌던 아이는 마루에 놓여 있던 미지근한 물주전자를 그대로 들고 갔고 외할머니는 그 물을 별 말씀 없이 드셨다. 그리고 그 무덥던 여름날 오후의 일은 별 것 아닌 듯 지나갔지만 때늦은 후회랄까? 갓 길어 올린 시원한 우물물 한 그릇 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 왜 그리 철이 없었는가에 대한 후회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오래도록 남았다.

그 뒤로 어른이 되어서도 동네 텃밭에서 땀 흘리는 어르신을 뵈면 시원한 물 한 그릇 가져다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주려면 성심껏, 진심으로 대해야한다는 가르침을 얻었으니 외할머니께서는 철없던 마음에 크나큰 가르침을 주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그 때 크게 혼을 내셨다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그리 오래갔을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죄송함으로, 주신 사랑에 대한 갚을 길 없는 그리움으로 '기억'이 아니라 '추억'으로 남아 있는 건 말없이 보여주셨던 외할머니의 깊은 사랑 덕분이 아닐까 싶다.

#2. 요즘 아이들 소위 점퍼가 아니면 입지를 않는다고 한다. 카페00에서 카푸치노와 캐러멜 마끼아토를 마시며 요즘 아이들을 탓하던 어머니들. 그들이 우루루 몰려나가며 계산대 앞에서 내미는 지갑은 모두 다 브랜드. 과연, 요즘 부모들이 요즘 아이들의 점퍼를 탓할 수 있을까?

#3. 6월 일제고사를 앞두고 일선 초등학교의 강제 보충수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초등학생까지 이른바 7교시를 실시한다는데 “참석하지 않겠다”는 학부모의 뜻이 있어도 빠지기 쉽지 않다고 한다. 천안지역 청소년 인권단체가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중고등학생 10명중 9명은 여전히 강제학습 중”.

하나라도 더 익히게 하고 하나라도 더 체험하게 하고 싶은 부모 마음, 일선학교의 노력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익히고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푸는 것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고, 성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가르쳐 주는 것 역시 우리들 어른의 의무가 아닐까?

#4.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는데 고민이 깊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가 받아쓰기 시험에서 '동그라미' 점수를 받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궁금해서 살펴보니 시험지에는 빨간 펜으로 '0' 이른바 빵점을 맞은 것이었다.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혼을 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까지 머리를 맞댔지만 결론은 '그냥 웃자!'

#5. 이제 곧 5월이다.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추억'이라는데 그 추억 속에 평생을 두고 새겨볼만한 말없는 가르침까지 함께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직접 꾸짖지 않아도 혼자서 느끼고 반성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여백의 사랑, 무언의 가르침을 줄 수 있다면 최고의 선물. 하지만 이 선물 만큼은 돈으로도 사교육으로도 살 수 없기에 요즘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는게 아닐까 싶다.

#6. 사람은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제일 멀다고 한다. “앎이 머리에 있을 때는 지식이고, 가슴으로 내려오면 지성이며, 사랑으로 발효되면 지혜가 된다”는 작가 이외수씨의 말. 이외수씨 역시 앎보다는 지혜로 삶을 살아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고 있음을 새겨보게 된다.

그 덥던 여름날, 속깊은 미소로 큰 사랑을 알게 해주신 외할머니. 이제는 꽃 한송이 달아드릴 수 없는 먼 곳에 계시지만, 사랑합니다! 그리고 많이 뵙고 싶습니다.

끝으로 두서 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께도 감사를! 성심껏 사랑하고 진심으로 살아가는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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