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영]희미한 옛사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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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영]희미한 옛사람의 그림자

[시론]김창영 따뜻한손 출판사 대표

  • 승인 2012-04-18 16:19
  • 신문게재 2012-04-19 21면
  • 김창영 따뜻한손 출판사 대표김창영 따뜻한손 출판사 대표
▲ 김창영 따뜻한손 출판사 대표·전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 김창영 따뜻한손 출판사 대표·전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다음 주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대통령 선거전은 바람처럼 가벼운 유권자들의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투표행태 앞에서, 적어도 세 번은 거세게 요동 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주 치러진 총선을 통해 12월 대선판도는 일단 '박근혜냐, 아니냐'로 가르마가 타진 게 사실이다.

이런 기미를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사람들이 놓칠 리 있겠는가. 가장 빨리 선수를 친 것은 안팎에서 욕을 먹으면서 새누리 안에 몸을 의탁하고서도 그 흔한 비례대표 자리 하나 꿰차지 못한 비상대책위원들이다.

이상돈은 방송에다 대놓고 “새누리당에선 대선주자로 박근혜 위원장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대통령 후보 경선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 이명박' 정서에 편승하여 집권여당을 박근혜 친위대로 만드는 데 앞장선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논리로 주인의 비위를 맞추는 데 열심이다.

힘이 좀 있다 싶으면 주변에서 먼저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담을 높여 잠재적 경쟁자들을 막는 것은 비단 왕조시대만의 처세법이 아니다. “박 위원장은 대선 후보로서 검증이 거의 다 됐다”는 70대 비대위원 김종인부터 “박 위원장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20대 비대위원 이준석까지 ― 벌써부터 박근혜 찬가가 당내에 요란하다. 두 번씩이나 대세론의 덫에 걸려 정상 부근에서 낙마하고만 이회창의 그림자가 박근혜 뒤에 어른거린 게 이 때문이다.

그의 주변에 드리워진 옛사람의 그림자는 이것뿐이 아니다. 승리의 여세를 몰아 대선을 기약하려면 '장물' 논란을 빚었던 아버지의 검은 유산부터 깔끔히 정리해야 한다. 유신시대에나 어울리는 권위주의적 행태도 청산해야 한다.

박정희 시대 18년은 4ㆍ19 혁명세대를 ―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 하얀 입김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였”던 순정한 청년들을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로 순치시키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개발독재에도 불구하고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자리를 파할 만큼 성장의 토대를 닦은 것도 그 시기지만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던 암울한 시대였다.

압축성장의 그림자는 여태까지도 그 빛만큼이나 짙게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오는 12월 대선은 한마디로 박근혜가 아버지의 유산을 깨끗이 정리하고 유신의 맛에 길들여진 자신과 얼마나 단절하느냐 아니냐, 그리고 그것을 국민들이 얼마나 진정으로 받아줄 것이냐에 따라 결판날 공산이 크다.

이번 총선은 양극화 해소와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정신보다는 집단 이기주의와 지역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린 퇴행적인 한판 쇼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금배지가 시세가 없다 해도 표절 수준을 넘어 대필 의혹을 받는 체육교수와 제수를 성추행했다는 파렴치범까지 버젓이 당선증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 과정에서 그는 아직도 가장 인기 있는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을 톡톡히 누리며 약체 CEO 한명숙을 압도하고, 여당의 오너로서 아우라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 빛으로 자신이 지고 있는 빚을 갚아야 한다. 지금처럼 과거를 청산하기에 좋은 기회는 없다. 현실에 안주한 채 대선으로 직행한다면 1대1 대응구도로 진행되는 맞대결에서는 역사적 빚과 현실적 그림자를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피땀으로 민주화를 쟁취하고 IMF사태와 국제금융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번 총선처럼 대선에서도 부끄러움을 모른 채 과거로 가는 열차를 타줄 것인가.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이렇게 이어지며 소시민의 역사의식을 역설적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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