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여기에서는 가끔 한자(漢字)문제도 나오는데, 이때 진행자가 하는 말이 바로 “공포의 한자문제”라는 것이다.
그 멘트답게 이 문제에서 많은 학생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그렇다면, 한자나 한문에 왜 어두운가?
한자는 한 자씩 '훈(訓)'과 '음(音)'을 익혀야 하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 글자 수가 많은데다가 획(劃)도 많고 복잡해 배우고 익히는데 어려움이 있거니와 한글전용과 국한문혼용을 오락가락해온 정책도 한몫을 했다.
이렇다보니 한자는 어려운 글자임이 틀림없고 차라리 그 시간과 노력으로 영어 등 다른 외국어를 익히는 편이 쉽고 여러모로 유용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한자어도 우리의 말 중의 하나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우리말 가운데 한자가 70% 넘게 차지하고 있음에도 막상 그 뜻과 어원을 잘 알지 못한 채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 말 가운데는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르거나 반대되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있어 한자로 써야 그 뜻이 분명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선거철에 많이 쓰는 부동표(動票)와 부동표(浮動票), 운동경기에서 한 팀의 연패(連覇)와 연패(連敗)가 그렇고 불을 막는 방화(防火)와 불을 지르는 방화(放火)가 그렇다.
어떤 인사는 결혼 이민자를 위한 '다문화 센터'의 다문화(多文化)를 전통차를 마시는 다문화(茶文化)로 알고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한자로 된 뜻을 잘 몰라서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른 나라의 아주 먼 곳'을 뜻하는 이역만리(異域萬里)를 수(數)와 거리 개념인 이억만리(二億萬里)로 쓰거나, 유명 인사나 연예인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성대모사(聲帶模寫)를 목소리를 '그려'내는 성대묘사(聲帶描寫)로 혼동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매스컴에서도 2위를 '등극(登極)했다'고 쓰기도 하고, '채소를 현지에서 공수(空輸)했다' 하여 무, 배추가 비행기에 타는 호강을 누리게 하는가 하면, 한 신문에서는 '새롭게' 표준어로 인정된 짜장면을 '25년 만에 복권(權)'되었다고 제목으로 뽑았는데 이 또한 한자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말만으로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의미를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전달하고 어휘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한자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자공부를 하는 것은 결코 고루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고 교육문화를 창달하는데 한자가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 왔고 이를 이해하자면 한자가 필수다.
요즘 한 단체에서 '한자교육 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한자교육을 널리 실시하되, 이와 아울러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
상형문자(象形文字)인 한자를 간단하게 고치자면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겠으나 정작 중국에서는 1956년에 2500자를 간체자(簡體字:簡字)라 해 어려운 번체자(繁體字)의 획을 줄이고 간편하게 고쳐서 쓰고 있고, 일본에서는 이보다 앞서 1949년에 '상용한자 자체표'를 만들어 약체자(略體字:略字)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막상 우리나라만 정체자(正體字:正字)를 유지하고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년 전, 발상지인 중국에서 재평가된 유교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빗대 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제목의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한자 또한 이런 맥락으로 보면 어떨까 여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필기(筆記)에는 약자와 간자를 쓰는 현실을 감안하고 학생과 일반인이 쉽게 익혀 쓸 수 있도록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한자 가운데서 자획(字劃)이 많은 글자를 골라 우리의 생활한자체(生活漢字體)를 만들고 예를 들어 '편체자(便體字:便字)'라는 이름을 붙여 보자고 한다면 몰상식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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