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기]목욕 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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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기]목욕 수건

[사이언스 칼럼]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2-04-09 14:12
  • 신문게재 2012-04-10 21면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려고 욕실에 들어가 머리를 감고 몸에 물을 적신 후 비누칠을 하려고 보니 목욕 수건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내를 불러 베란다의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는 목욕 수건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 날은 밖의 날씨가 추워서인지 아내가 수건을 건네기 위해 욕실 문을 조금 여니 싸늘한 기운이 따듯한 욕실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추운 베란다에 널려있다 내 손에 건네진 목욕 수건은 의외로 포근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 아내가 새로 사온 그물망처럼 생긴 폴리에스터 수건이었다. 오래 전 미국 유학 시절 나는 시카고 북쪽 교외인 에반스턴이라는 곳에 살았다. 시카고는 겨울이 되면 북극권의 한랭기온이 내려와 바람이 많이 불고 눈이 많이 오면서 무척 추운 곳이다.

겨울 일기예보를 들으면 늘 바람으로 인한 체감 온도가 실제 온도보다 많이 낮으며, 영하 20℃ 이하인 날이 많다. 그럴 때면 늘 방송에서 일기예보를 할 때 밖에 있는 금속성 물질을 맨손으로 붙잡지 말 것을 당부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면 왜 다 같이 추운 곳에 있었던 금속은 차게 느껴지고 수건은 그렇지 않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념들을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어떤 물체의 뜨겁고 찬 정도를 우리는 온도라고 부른다. 온도는 온도계라는 도구를 이용해 수치로 나타내며 수치 뒤에는 늘 ℃ 등의 단위가 붙게 된다. 사람은 뜨겁고 찬 정도를 피부에 있는 신경종말기관인 온도수용기에 의해 감지하게 된다. 우리 몸의 온도수용기는 피부가까이에 있는 냉수용기와 온수용기로 나뉘어 있다. 우리 몸은 온도계처럼 절대적인 온도를 측정하는 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차거나 뜨거운 정도를 감지한다. 즉 손가락으로 잡은 물체가 손가락보다 차가워서 피부온도가 내려가면 냉수용기가 작동해 차갑다는 신호를 뇌로 보내고, 반대로 물체가 손가락보다 뜨거우면 온수용기가 작동해 뜨겁다는 신호를 뇌로 보내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한 손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다른 손은 찬물에 담근 후 조금 뒤 그 중간 온도의 물속에 두 손을 함께 담그면, 한 손은 차게 또 다른 손은 따뜻하게 느끼게 된다.

사람이 피부와 접촉한 물체의 온도를 느끼는 데에는 물체의 온도뿐만 아니라 그 물체가 가지고 있는 열전도율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전도율이란 물체가 얼마나 빨리 열을 전달하는 지를 나타내는 물체의 특성이다. 금속은 나무에 비해 열전도율이 100배 이상 빠르며 공기에 비해서는 1000배 정도 더 빠르다. 즉 접촉 시 우리 손으로부터 열을 빨리 빼앗아 가는 금속 물체는 그렇지 않은 나무나 목욕수건보다 차갑게 느껴지게 된다. 목욕수건의 경우 섬유의 열전도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엉성한 조직 속에 공기를 많이 가지고 있어 더욱 열전도율을 낮춰주기 때문에 처음 만지는 순간 찬 느낌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온도를 감지하고 인식하는 방법은 온도계가 보여주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며, 다분히 상대적인 느낌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물리적인 온도 변화는 심리적인 느낌과도 연결돼 있다.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같은 방의 온도를 더 싸늘하게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뇌기능 연구에 의하면 물리적인 온도 변화의 인식과 관련된 뇌 부위인 섬엽(insula)은 사회적 따뜻함과 연관된 신뢰나 공감과 같은 느낌의 처리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이며 시인인 칼릴 지브란은 '관대함이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베푸는 것'이라고 했다. 목욕수건이 열린 틈을 가지고 그 속에 많은 공기를 품고 있어 차가운 밖에 있어도 그리 차갑지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나도 세상을 살면서 열린 마음을 품고 나 이외의 생각들을 함께 품을 수 있는 관대함을 가질 수 있기를, 그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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