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한 그루의 나무, 한 명의 생존자를 구하고자 조국의 파란 창공과 푸른 산 사이를 날아서, 뜨거운 화염을 뚫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연기 사이로 쉴 새 없이 물을 나르는 이들이 있다. 마치 독사로부터 아기새를 지키고자 몸부림치는 어미새처럼 이글거리는 화마로부터 산림을 지키고자 눈물겹게 투쟁한다.
백두대간의 회오리치는 강풍과 험준한 산악 속에서, 산림 병해충 방제 농약을 살포하고자 추락의 위험을 감수하며 아찔한 저공비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살포되는 농약이 기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창문을 밀폐한 채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여름철 50℃가 넘는 숨 막히는 온도와 4시간동안 싸우며 살아가는 훌륭한 공직자, 산림공무원들이다. 흔히 빨간색 헬기가 보이면 많은 사람들은 119헬기로 생각한다. 산림청 항공관리소에 배치된 소방헬기는 40여대가 넘는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공주 정안 밤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산림헬기를 이용한 방제의 효과에 힘입어 밤 생산량이 급증해 밤 재배 농가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헬기는 산불진화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훼손된 지역에 단풍나무 씨앗을 뿌리기도 하고 119구조대와 지자체의 지원요청 시 장마철 인명피해와 등산객 구조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2001년 5월 17일 경북 안동시 계명산에서 산림청 소속 소방헬기가 산불 진화 중 추락했다. 헬기는 계곡에 추락 직후 전복되면서 폭발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탑승자였던 전흥덕 조종사, 양성목 정비사, 이용수 기장이 순직했다.
세 분에게는 녹조 근정 훈장이 추서되고 이중 전흥덕 조종사와 양성목 정비사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한 순직자의 동료는 '막내아들이 농구하는 사진을 보여주며 흐뭇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생전에 그렇게 지키려고 애쓰던 아름다운 푸른 숲을 후배들이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분들은 군에서 나라를 지킨 애국자였다. 임무를 탁월하게 수행한 항공인이었으며 산림을 보살피는 자랑스러운 산림공무원이었고 한 가정의 훌륭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이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대전현충원에는 약 5만9000여기의 묘 가운데 일반 공무원 묘는 매우 적다. 순직공무원 묘역에 90여기가 안장돼 있으며 산림청 소속 공무원은 7위가 안장돼 있다.
시민들은 현충원에는 애국지사나 군인, 경찰 등의 묘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형 재난과 재해로 인한 국가적 재난이 늘어남에 따라 재난수습과 인명구조, 방제작업 등으로 인해 희생을 당하는 공직자들이 늘고 있다.
며칠 전 산림공무원들이 안장된 순직공무원묘역을 찾았다. 산림청 직원들이 다녀간 듯 새 화환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잊지 않고 고인들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되살리고 있다면 나라의 푸른 숲을 지켰던 그분들은 하늘나라에서 고마워할 것이다. 활짝 핀 하얀 국화가 가득한 화환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가교를 끊임없이 놓는 아름다운 모습에 녹색 숲의 미래가 그려졌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숲을 위한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살신성인의 표상이다. 녹색 선진국을 만드는 씨앗이며 이분들의 영예로운 죽음은 대전현충원에서 영원히 대한민국과 함께 빛날 것이다.
나무에 짙게 물이 올라 새순을 살찌우는 4월을 맞아, 순직공무원 묘비 앞에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자. 푸른 숲을 지키고자 대한의 파란 하늘에서 아름다운 비행을 하는 산림공무원들의 노고에 마음속 깊이 감사드린다. 오늘도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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