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헌 변호사 |
국민의 입장에서 국격이 높아진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울컥해지는 자부심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 어떠한 선진국과 비교해도 대한민국의 품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정상들의 배우자 만찬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대통령 부인께서는 지난달 26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정상들의 배우자만찬을 주최한바 있다. 이에 대해 한 역사학자가 트위터에 이는 나라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한 이후 언론에서 찬반논쟁이 있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가 다수 보존되어 있는 장소이고, 유구한 세월을 견뎌온 문화재들은 기온이나 습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전시실에서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는 음식을 접대한다는 것은 우리의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이야 말로 우리의 전통문화가 집약된 곳으로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기회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양쪽 주장 다 일리가 있다고 사료된다.
필자가 이러한 논쟁을 소개한 이유는 박물관에서 만찬을 하는 것 자체가 옳은지를 따져보고자 함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비판이 제기 되었을 때 정부는 한번이라도 그러한 비판에 귀기울였느냐 하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비단 국립중앙박물관 만찬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2010년 G20 정상회의 때도 대통령께서 중앙박물관에서 만찬을 주최한 적이 있고 그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비판이 제기된 바도 있다. 이미 비판이 제기된 사안을 다시 한번 기획하여 진행하려 한다면 마땅히 정부로서는 일반국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문가집단에 조언이라도 구하고 일을 진행했어야 옳을 것이다. 더구나 중앙박물관 전시실은 문화재보호를 위해 일반 국민들은 음료수 한잔도 마실 수 없는 공간이 아닌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이번 만찬을 기획하면서 예전의 비판을 고려하여 충분한 조언을 얻고 진행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나라의 품격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국민과 정부가 모두 그에 부합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국민들로서는 상식에 근거해 합법적인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할 줄 알아야 하며, 특히 정부는 어떠한 행정행위를 함에 있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있으니 우리가 이끄는 대로 따르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사전에 충분히 국민의 의견을 듣고 국민의 비판에 귀기울일줄 알아야 하며,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거짓정보를 제공하거나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정책을 강행하면서 이에 대해 비판을 하면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행위 자체가 격을 떨어뜨리는 일일 것이다.
중앙박물관 만찬을 예로 들기는 했으나 정부 자체가 국격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일들은 꽤 된다고 본다. 4대강에 설치된 보에 하자가 발생하고 있음이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별문제 없다는 식의 태도, 민간인사찰이라는 중차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침묵하거나 전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이 많다는 식의 책임전가하기, FTA 협상 당시 보여준 정부의 말바꾸기와 철저한 정보비공개 행태, 표현의 자유의 제한과 관련하여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을 돌아보면 과연 정부가 국격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하는 의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국격이 있는 나라란 그저 국제행사나 별탈없이 치르는 나라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식에 근거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을 수 있어야 하며, 민감한 국제문제에 강한 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서 강조하고 있는 국격은 왠지 어느 한 개인만을 위한 표어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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