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간단히 요약하면 미국판 '배틀로얄'이다. 죽거나 죽이거나 해야 하는 게임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2300만부 이상 팔려나간 수잔 콜린스의 동명 원작은 그렇게 만만한 텍스트가 아니다.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구도는 시대를 풍미했던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변주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서바이벌 혹은 리얼리티 TV쇼에 쏠리는 과도한 관심, 그리고 게임 참가자들이 TV에 출연해 매력을 발산하고 국민들에게서 후원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우리가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현실에 대한 풍자이자, 미디어에 관한 날카로운 보고서다.
게다가 가진 자 1% 대 못 가진 자 99%의 대립은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를 연상시킨다. 미국인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현실과 공명하는 이야기.
영화는 원작 소설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영리하게 각색했다. 소녀 감성으로 충만한 주인공 캣니스의 독백에서 벗어나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를 조명함으로써 다양한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영화로 탈바꿈했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가득한 판타지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판타지 액션도 마치 우리 주변의 이야기인 것처럼 편안하게 다가선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참가자들의 불꽃 튀는 서바이벌 게임은 긴장감이 넘친다. 캣니스 에버딘은 제비뽑기에 뽑힌 어린 동생을 대신해 헝거게임에 자원한 소녀다.
뛰어난 활쏘기 솜씨와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캣니스가 극한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며 게임을 장악해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살아남으려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게임의 룰 속에서 참가자들과 우정을 나누고, 로맨스를 키워가는 캣니스의 모습은 새로운 영웅 캐릭터의 탄생이다.
현실 자체가 거대한 게임이나 다름없는 세상, 배부른 자와 배고픈 자의 극명한 대비와 갈등이 최고의 오락거리로 활용되는 디스토피아는 흥미롭지만 불편하다. 탄식이 절로 나오는 이런 설정들이 게임의 룰을 흔들고 하나씩 바꿔가는 캣니스를 응원하게 만든다. 캣니스는 겨우 16살 나이에,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세상에서, 자신만의 이상, 사랑을 씩씩하게 만들어 간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거대한 혁명의 중심으로 떠오를 캣니스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처럼 '헝거게임'은 '캣칭 파이어' '모킹재이' 등 4부작으로 가는 첫 관문을 멋지게 열어젖혔다. 천편일률적인 판타지 영화에 식상한 관객이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겠다. 액션 어드벤처 드라마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에 성장, 우정 등 매력 코드가 빽빽하다. 지적인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다.
'해리 포터'와 '트와일라잇' 같은 프랜차이즈 영화를 성공으로 이끈 확률의 신은 '헝거게임'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미미한 확률이긴 하지만 이번 첫 작품만 보면 그럴 것 같다.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탄생이고 영리한 엔터테인먼트의 귀환이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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