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행사는 대호지·정미 4·4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대호지회장 최규범, 정미회장 박영일)주관으로 대호지면 창의사와 정미면 만세광장에서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모제와 기념식, 만세운동 재현 순으로 진행됐다.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시작해 천의장터에서 격전을 벌인 4·4독립만세운동은 남주원, 이두하, 남계창, 남상직, 남상락이 파고다 공원에서 있었던 3·1운동에 참가하고 우리 고장에서도 독립운동을 할 것을 다짐하며 귀향한 것이 동기가 됐다. 당시 대호지 면장이던 이인정과 대호지면사무소 직원이던 민재봉, 송재만, 지역유지던 남주원 등이 중심이 돼 4·4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면서 전국 최초 민·관 합동 항일운동이 전개되게 된다.
4월 4일 대호지면 광장에는 오전 9시를 기해 약속대로 600여 명이 참석해 사전계획대로 30자 높이의 대나무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대호지면 이인정 면장의 연설에 이어 남주원의 독립선언문 낭독, 이대하의 애국가 제창, 행동총책 송재만 선창의 선서와 함께 만세 시위를 시작해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이어졌다.
어느새 1000여 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한 천의 가두시위는 남주원, 이대하, 한운석의 웅변으로 독립만세운동의 열기는 북돋아지고 천의장터는 만세의 도가니가 됐다.
오후 4시께 이 정보를 듣고 진압하기 위해 온 당진경찰서 순사의 권총 발사로 시위대 4명이 중상을 입으면서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평화적 비폭력 시위에서 투석전으로 대응하는 폭력시위로 변하게 됐으며 천의 왜경주재소가 파괴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구속 입건된 열사만도 400여 명이 넘었고 현장 학살된 사람이 1명, 옥중에서 고문치사 당한 사람이 3명, 확인된 수형인만도 5년에서 8년까지 39명, 태형 90도 이상이 88명으로 누락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2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편 현재 대호지면 창의사(倡義祠)에는 고인 579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정미면 천의리에는 4·4독립만세 기념탑이 있다.
당진=이종식 기자 leejs6604@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