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
전통적인 매체를 구사하는 예술, 즉 올드미디어아트의 대표적인 것은 회화와 조각이다.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입체로 구현하는 평면회화와 입체조각의 영역은 수천ㆍ수만년동안 인류의 문화가 축적해온 재현의 기술이며 표현의 방법이었다. 기실 선사시대의 암각화나 동굴벽화, 그리고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화 속에는 추상과 개념, 설치 등을 관통하는 20세기의 예술적 의제들이 다 들어있다. 하지만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의 예술은 그 차원이 다르다. 공동체 차원의 소통을 위한 제의적인 요소에서 출발한 시각적 표현물이라는 점에서 근대 이전의 예술은 실용성에 기반을 둔다.
근대 이후의 예술은 실용성보다는 무목적성에 그 존재근거를 둔다. 근대이후의 예술은 구체적인 쓸모의 문제를 넘어선 정보소통의 제도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미디어라는 말이 근대이후의 예술제도와 개념에 있어 중요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미디어아트와 올드미디어아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술의 생산과 소통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뉴미디어아트는 원본과 복제본의 차이가 없는 새로운 예술이며, 디지털과 영상, 그리고 인터넷 등의 새로운 정보생산과 유통 방식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그 이전과 다른 새로운 예술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그리고 영상문화를 매개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 상황은 인류사를 뒤바꿔놓은 거대한 사건이다. 마크 포스터는 인류의 역사를 생산양식의 변화과정으로 설명한 마르크스의 프레임을 차용해서 정보양식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는 정보양식론에 근거하여 디지털과 인터넷이 만들어낸 동시대를 제2미디어시대라고 규정한다. '새로운 매체'의 의미를 망각한 채 미디어아트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심란한 물신화 현상이다. 뉴미디어아트 자체를 하나의 장르 개념으로 인식한 나머지 특정한 예술가들이 표현 수단으로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는 것 정도로 그 의미를 한정하는 데서 나오는 오류다.
백남준이 비디오를 예술언어로 채택한 이후 예술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것으로 바뀌었다. 무한히 복제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샘플링과 믹싱은 예술생산의 근간을 뒤집었다. 인터랙티브아트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한다. 단수가 아닌 복수의 매체를 사용하는 멀티미디어아트라는 개념도 있다. 디지털은 전자적으로 부호화한 정보생산과 저장방식을 말한다. 0과 1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디지털 세계는 예술의 생산과 유통, 사용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정보의 민주화를 이뤄낸 디지털과 인터넷의 가능성은 전문화나 분화와 같은 근대적 패러다임을 통섭이나 융합 등과 같은 탈근대적인 것으로 바꿔놓고 있다. 바야흐로 근대적인 예술 개념과 제도가 새로운 미디어 시대를 맞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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