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정치부장(부국장) |
심 대표의 읍소가 통한 것일까. 이 전 대표는 26일 보령ㆍ서천에 출마하는 류근찬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모습을 보였고, 27일 예산을 찾아 서상목 후보를 지원했다. 지원유세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 말을 아꼈지만, 이 전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4ㆍ11 총선을 목전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회창ㆍ심대평 두 정치인의 표면적 갈등 원인은 비례대표 선정 문제다. 그러나 속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2008년 2월 1일 양자가 뜻을 모아 자유선진당을 출범시킨 후 분란은 늘 내재했고, 표출돼 왔다. 총리직을 둘러싼 심대평의 탈당과 복당, 일부 시도당위원장들의 대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의원 탈당에 대한 대표 책임론 등은 지난 4년 자유선진당이 보여준 생활기록부다.
잘해야 3, 4명 당선 될까말까한 비례대표 문제가 표면적 이유인 까닭이다. 물론 공천 과정은 이 전 대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추천한 지역구 후보가 비례대표로 물러나고, 타당에서 낙천한 후보가 지역구로 나서는 상황은 원칙을 목숨처럼 여기는 이 전 대표가 선뜻 납득할 수 없었을 듯 하다. 더구나 공천이 뒤바뀐 배경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그림자가 엿보인 것은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97년 대선 당시 청와대 문턱까지 갔던 이 전 대표는 DJP 연합이라는 막판 변수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십수년이 지났지만 이회창ㆍ김종필 두 정치인의 물리적 결합이 가능한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전 대표, 그는 2007년 기호 12번을 받아 단기필마로 대권 3수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때의 출사표가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였다. 이 전 대표의 시선은 1997년 이후 늘 대선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까지 보수연대를 말한 것은 올 대선에서 어떤식으로든 역할을 찾겠다는 표현이다.
심 대표, 그는 이제 홀로서기에 나섰다. 세종시를 출마지로 정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안개와 같다. 이해찬 전 총리의 등장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막판까지 세종시 공천을 늦춘 것은 선진당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인 듯하다. 역대 대선에서 충청권표는 크기에 관계없이 승패를 갈랐다. 그러나 선진당이 결코 우리편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이해찬 카드'를 꺼내든 배경으로 보인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총선을 넘어 대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현역의원을 40% 넘게 교체했어도 잡음이 적은 이유다.
심 대표는 엊그제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하겠다며 사즉생(死卽生)을 말했지만 총선의 여정은 고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나 심 대표 모두 '상유십이 순신불사', '사즉생'이라는 충무공의 말을 좋아한다. 그러나 충무공이 입신양명을 위해 한 말은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장수의 독백이었다. 최선을 다해야만 승패의 기록은 아름답게 남겨진다. 그것이 '아름다운 원칙'이다. 이 전 대표나 심 대표는 선거라는 전쟁을 앞두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일부터 총선 후보자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후보들의 한줄 각오가 담긴 현수막이 뒤덮일 것이고, 나를 뽑아 달라는 유세차량 확성기 소리는 유권자의 귀를 때릴 것이다. 총선의 봄이 '축제의 봄'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후보자를 포함한 정치권 전체의 후회없는 선전이다. 그것이 유권자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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