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세계무역에 있어서도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큰 무역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러한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한 염소 치던 소년이 그의 염소들이 커피나무 열매를 먹고 활기차게 뛰는 모습을 보고 그 열매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이슬람교의 수니파 수도사들이 커피의 각성효과를 이용해 철야기도에 사용했고 1475년에는 이미 오스만 투르크(현재 터키)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에 최초의 커피숍이 생겼으며 1652년 런던, 1671년 파리에 각각 커피숍이 문을 열면서 유럽 전역으로 커피숍이 유행처럼 퍼져나갔던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심지어 오스만 투르크에서는 하루에 한 잔의 커피를 사 줄 수 없는 남편과는 이혼할 수 있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종 황제가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공사관에서 커피를 대접받았고 그 후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커피에 대한 첫 기록이라고 하니 다른 나라에 비해 커피가 비교적 늦게 전해진 것 같다. 이러한 커피가 세계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말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이었을 것이다. 바로 오늘날과 같이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지 못한 예전에는 커피숍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여론을 형성하고 풍문을 만들어내어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바로 프랑스의 커피숍인, 카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빈말은 아닌 성 싶다.
최근 역사에 남을만한 유명한 커피소송은 1992년 일어난 사건이다. 나이 든 할머니가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 뜨거운 커피를 구입한 후 설탕을 타기 위해 그 뚜껑을 열다가 그만 엎질러 허벅지 등에 3도 화상을 입어 맥도날드에 수술비용만의 부담을 요구했으나 맥도날드 측에서 이를 거절하면서 일어난 소송이었다.
결국 맥도날드는 거의 30억원에 가까운 배상판결을 받았고 이 사건으로 커피 잔을 잡을 때에 뜨겁지 않도록 마분지로 만든 보호대를 부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같은 경우 커피를 산 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본인의 잘못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긴 하지만 미국법원은 맥도날드가 그의 매장 내에서 이러한 유사사건이 800여 건 이상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고객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뜨거운 커피를 팔았다는 이유로 고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이 드물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전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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