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개 의석이 걸린 비례대표 공천은 졸작이다. 188명의 후보를 내 3.48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비례대표에 대한 촌평이다. 국민 눈높이 공천으로 '불신 뚫고 하이킥'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하게 말해 비례대표 취지를 유린했다. 후보 등록을 한 20개 정당 중 듣도 보도 못한 정당들이야 제멋에 겨웠다 치더라도, 의석 확보가 가능한 주요 정당들을 보면 가관이다. 공정한 룰이 보이지 않는다.
비례대표에서 차원 높은 '통합적ㆍ표출적 기능'까지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이해를 정치에 투입한다는 취지는 살아 있어야 한다. 19대 비례대표 등록 결과는 이와 정면으로 틀어져 있다. 선거법 덕이지만 여성이 79명(지역구는 여성 후보가 7.1%인 66명)을 차지한 것은 정치참여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완득이' 엄마(이자스민) 공천과 같은 바람직한 시도도 있다. 그럼에도 직능ㆍ계층ㆍ세대를 고루 대변하지 못해 낙제점이다.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의 첫걸음이라는 말은 이제 한 동안 헛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다른 무엇보다 지역구 공천 뺨치는 계파공천이 재연됐다. 전문성, 참신성은 스토리와 흥행성에 가려졌다. 정치인이 91명이고 직능대표성이 희석된 틈새로 사회적 양지의 사람들, 비례대표를 '떴다방'으로 아는 정치철새도 날아들었다. 비례대표에도 새누리당은 친박(친박근혜) 성향, 민주통합당은 친노(친노무현) 성향 인사가 많은 부분이 당연시되지만 잘못된 사례다. 자유선진당은 당 내부 인사로 4분의 3을 채워 분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지역구 공천자를 비례대표로 공천하는 황당공천도 있었다.
특히 부족한 것이 지역 안배였다. 정당명부제를 통해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는 지역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지역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중앙당이 머리라면 지방은 몸통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면 응당 그래야 한다. 지역을 팔다리만큼만 생각했어도 중앙당이 이렇게 전권을 휘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20위권에 호남 4명, 영남 3명인 민주당만 봐도 열세지역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도 충청권은 언제나 그랬듯이 무대접, 푸대접 얘기나 슬쩍 하고 또 그대로 흘러간다.
이번 비례대표 후보에 충청권 인사는 여당과 제1야당을 통틀어 청주의 도종환 시인 정도다. 보령이 고향인 이에리사, 논산 출신의 김용익 후보는 고향을 일찍 등진 연고 인사로 지역에서는 분류한다. 18대 때 당선 가능권의 충청권 출신이 당시 한나라당 3명, 민주당 2명에 불과했던 것보다 사정은 안 좋다. 선거와 정치적 효과의 비례지수를 충청권에서 낮춰 보거나 무시하니 이렇다. 비례대표가 지역 정치역량이 되는 현실에서는 합리적인 비례관계를 위한 배려는 당연한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 전국구 의원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비례대표를 채택한 의미를 도저히 못 찾겠다. 5ㆍ16 공신들의 논공행상으로 처음 도입된 6대 국회와 무엇이 다른가. 정당정치의 구조적 공고화에 도움이 안 되면서 높은 비례성이 제도적 목적인 비례대표제가 금배지를 편하게 달려는 도구화하고 있다. 정치개혁의 일환인 비례대표를 다시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폐지하자고 오늘 주장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게 됐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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